술탄-차르-황제… 스트롱맨 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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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세계정치사 ‘新권위주의 원년’

글로벌 신권위주의 시대의 리더들. 왼쪽부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글로벌 신권위주의 시대의 리더들. 왼쪽부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24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2018년은 세계 정치사에서 ‘신권위주의’ 도래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2003년 집권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장 2033년까지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 ‘술탄, 황제, 차르, 파라오’ 잇따라 집권

에르도안 대통령에겐 터키의 전신 오스만제국의 황제를 일컫는 술탄에 빗대 ‘21세기 술탄’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에르도안 대통령뿐만 아니라 2018년은 ‘황제’ ‘차르’ ‘파라오’ 등이 줄줄이 출현한 해로 기록되게 됐다.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3월 종신 집권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해 ‘황제’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같은 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앞서 14년간의 통치에 이어 2024년까지 6년 더 러시아 대통령직에 올라 ‘현대판 차르’라는 별명을 얻었다. 역시 같은 달 이집트에선 ‘파라오’라는 별칭을 얻은 군부 출신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2022년까지 4년 더 집권하게 된다. 그가 헌법을 개정해 2022년 이후에도 권력을 놓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기 집권 바람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나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똑같이 불고 있다. 2월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대연정에 성공해 2005년부터 이어진 집권의 네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4월엔 헝가리에서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총선에서 승리해 역시 네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올해 9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까지 3선에 성공해 2021년까지 연임하면, 그는 일본 최장기 총리가 된다.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장기 집권 권력자가 민주주의 투표로 자리를 내놓은 경우는 거의 없지만, 반대로 ‘스트롱맨(강한 지도자)’을 자처한 리더가 장기 집권으로 가는 사례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남미에서 그런 바람이 거세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올해 6월 재선에 성공했고,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은 2016년 헌법을 개정해 임기 제한 없는 대통령에 올라 지난해엔 부인을 부통령에 임명하기도 했다. 혼란에 빠진 브라질에선 국민의 40%가 군부 쿠데타를 원한다는 여론조사도 발표돼 충격을 주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등 임기는 정해졌지만 강력한 스트롱맨을 자처하는 리더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 왜 스트롱맨이 성공하는가

민주주의를 도입한 국가들조차 ‘스트롱맨’에게 의존하는 시대로 회귀하는 세계적 추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달 ‘스트롱맨의 시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장문의 기사를 통해 “급변하는 정세는 세계 모든 지역에서 강력하고 독단적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증폭시켰다”고 분석했다.

중동의 혼란과 이민자 급증, 경제 악화 등을 틈타 강력하고 터프한 엘리트들이 ‘우리’를 ‘그들’에게서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며 집권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부패한 엘리트가 될 수도 있고, 욕심 많은 가난뱅이가 될 수도 있으며, 외국 인종이나 종교적 소수자 등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 정치인의 거짓말이 반복되고, 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관료, 은행가, 판사, 기자 등이 신뢰를 잃으면서 이런 혼란 속에 강력한 지도자를 추구하는 대중의 욕구가 증폭되고 있다고 잡지는 분석했다.

한편으로 장기 집권자들은 ‘과거 영광의 시대’를 다시 열겠다고 약속하며 강국이 될 수 있는 장기적 전략 목표를 제시하고 국가를 경영하지만, 유권자의 ‘변덕스러운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단기 임기의 민주주의 지도자들은 눈앞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도 스트롱맨들에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정보통신 기술의 혁명이 국가 대신 개인들에게 힘을 실어주어 독재를 약화시킬 것으로 모두가 믿었다.

하지만 중국 러시아 이란 등의 사례를 보면 강력한 권력자들은 인터넷 여론을 쉽게 통제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대중에게 전파하는 데서 우위에 서고 있다.

타임은 “적잖은 미국인들조차도 미국의 정치개혁이 중국보다 더 시급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런 생각이 스트롱맨들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냉전의 승자들이 선택한 시스템의 매력은 크게 떨어져가고 있으며, 민주주의 지도자가 국가의 안보와 대중의 민족적 자부심을 보장하지 못할 때 스트롱맨은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술탄#차르#황제#스트롱맨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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