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월드] 프랑스 전역 확산…제2의 미투 운동 ‘비주따주’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일 17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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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도시 캉에서 전해진 ‘비주따주’(bizutage·신고식) 소식은 프랑스 전역을 몇 달간 충격에 몰아넣었다. 2016년 캉의 한 의과대학에서 2개 학생 단체가 신입생들의 가슴과 성기 사진을 벽에 붙여 놓은 사실이 드러난 것. 또 신입생들에게 갖가지 임무를 완수해 점수를 따게 했는데 포르노 촬영이나 자위 등 사실상 성행위를 유도하는 미션이었다.

한국에서도 3월 신학기가 되면 신입생 환영회에서 과도한 음주에 따른 사고 소식이 들려오는 것처럼 프랑스에서도 유사한 문화가 만연해 있다. 선배가 후배에게 과도하게 술을 마시게 하거나, 얼굴에 계란이나 밀가루를 뿌리는 전통적인 방식 외에 길에서 화장지를 팔게 하거나 옷을 벗고 거리를 달리게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성적인 행동을 강요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남부 도시 툴루즈의 한 대학에서는 남자 엉덩이에 프랑스 전통음식을 부어 여학생에게 먹게 하고 남성의 성기로 여성의 얼굴을 때리게 하는 등 신고식을 빙자한 성추행이 드러나기도 했다.

프랑스는 대학 뿐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비주따주’ 문화가 퍼져 있다. 지난해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에서 프랑스의 파리생제르맹(PSG)으로 이적한 브라질 출신 축구 스타 네이마르는 첫 경기에 나서기 전날 밤 의자에 올라가 동료 선수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프로축구 세계 최고 이적료를 받은 그도 프랑스의 ‘비주따주’ 문화를 피할 수 없었다.

프랑스 소방관들도 요란한 비주따주로 유명하다. 지난달에는 파리에서 근무하는 한 젊은 여성 소방관이 “2016년 남성 선배 소방관들이 숙소에 도착했을 때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해당 남성 소방관들은 “비주따주의 일종이었고 여자 소방관들도 함께 있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신고식이 당하는 후배에게는 즐거운 관습이 아니라 폭력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파리에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에릭(19)은 기자와 만나 “고등학교 클럽 신고식 때 선배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웃으면서 조롱하듯 여러 노래를 부르게 하는 심술궂은 선배 모습에 마음이 불편했다”고 전했다.

프랑스에서는 1998년 다른 사람을 고통 받게 하거나, 굴욕감을 줄 경우 최대 징역 6개월 또는 벌금 7500유로(약 980만 원)를 내는 이른바 ‘비주따주 방지법’이 마련됐다. 이 법에 의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34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프랑스는 국가 차원에서 ‘비주따주’ 방지 운동에 나서고 있다. 1997년부터 교육부, 체육부 등이 합동으로 비주따주 방지 국가위원회(CNCB)를 설립한 뒤 피해자들을 구제하고 학생들에게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마리-프랑스 앙리 CNCB 위원장은 “비주따주 문제의 핵심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혹은 의지에 반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라며 “신입생이나 신입 직원은 조직에서 소외될까봐 두려워 강요를 거절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조직 논리에 묻혀 용인됐던 성희롱을 타파하려는 움직임인 ‘미투 운동’과 비슷한 대목이다. 앙리 위원장은 “20년 동안 비주따주가 관습이 아닌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은 확산됐다”며 “확실한 증거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법만으로는 해결이 어렵고 결국 교육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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