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 신세된 ‘원조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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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취임후 ‘마러라고’에 밀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처음으로 악수를 나눈 6일, 시리얼 브랜드 ‘포스트’ 창업자의 딸 마저리 메리웨더 포스트는 지하에서 웃고 있었다. 세계를 호령하는 미중 정상이 역사적 첫 만남을 플로리다 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가지면서 예전 자신의 대저택이 ‘겨울 백악관’이 되기를 바랐던 그의 꿈이 만개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가 10일(현지 시간) 기준으로 1월 말 취임 이후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총 21일을 머물렀다고 전했다. 대통령으로서 보낸 81일 중 약 4분의 1을 마러라고에서 보낸 셈이다.

트럼프가 초호화 리조트에 마음을 뺏긴 동안 75년 역사의 ‘원조 대통령 별장’인 메릴랜드 주 커톡틴 산맥의 캠프 데이비드는 찬밥이 됐다. ‘역대급’ 이단아 대통령인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의 전통적인 휴가 패턴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대통령의 ‘새 부인’ 마러라고와 ‘본처’ 캠프 데이비드는 태생부터 극과 극이다. 27세에 ‘포스트’ 창업자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벼락부자가 된 포스트는 1927년 플로리다 해변 근처에 궁궐같이 화려한 대저택인 마러라고를 지었다. 1973년 세상을 떠나면서 ‘겨울 백악관’으로 사용해 달라며 정부에 소유권을 기탁했지만 관리 비용 문제로 정부 측에서 난색을 표했고 1986년 부동산 재벌 트럼프의 소유가 됐다.

반면 캠프 데이비드는 공무원을 위한 휴양시설로 출발했다. 뉴딜 정책 주관 부서인 공공사업진흥국(WPA)이 1938년 건설했다. 1942년 대통령 휴양지로 용도가 변경된 것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수도 워싱턴 인근의 공기 좋은 휴양 시설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수풀이 우거진 산속의 이곳을 후임 해리 트루먼은 대통령의 공식 휴양지로 지정했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자신의 손자 이름을 따 이곳을 ‘캠프 데이비드’로 이름 지었다.

트럼프가 오가는 지금도 대중에게 개방되는 마러라고와 달리 캠프 데이비드는 철통 보안을 자랑한다. 가시 박힌 철제 펜스로 둘러싸여 있는 캠프 데이비드는 민간인의 접근이 원천적으로 금지된다. 사생활이 철저하게 보호된다는 장점 덕에 수많은 대통령이 이곳을 휴가지로 애용했다. 조지 W 부시는 총 149회 방문하면서 487일을 보냈고, 비교적 덜 이용한 것으로 알려진 버락 오바마도 39회 방문해 93일을 보냈다. 뉴욕타임스(NYT)는 캠프 데이비드를 “대통령에게 임기 중 진정한 프라이버시와 가장 가까운 느낌을 제공하는 장소”로 표현했다.

바깥세상과 단절됐다는 느낌 덕에 이곳은 중요한 정상회담 장소로도 애용됐다. 1978년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평화협정이 이곳에서 열려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이어졌다. 오바마는 2012년 주요 8개국(G8) 회의를 이곳에서 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와 이곳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논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하지만 산속의 소박한 외양 때문인지 트럼프타워에서 볼 수 있는 호화 인테리어에 익숙한 트럼프는 캠프 데이비드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1월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캠프 데이비드는 매우 소박하다. 좋은 곳이다. 하지만 한 30분 좋아하다가 말 것이다”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마러라고에 대한 애착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마러라고 방문에 드는 예산 문제를 제외하고도 “많은 역사학자가 캠프 데이비드가 갖던 단순·소박함이라는 미국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트럼프#별장#캠프 데이비드#마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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