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중동문제 해법은 ‘양다리 외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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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입 최소화… ‘현상 유지’ 주력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 묵인하면서, 잇단 정상회담 통해 아랍권 달래기
시리아 아사드정권도 사실상 공인… 러시아의 세력확장 부추길 가능성

‘양다리 외교를 통한 현상 유지(status quo).’

서서히 베일을 벗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새 중동 정책 기조다. 트럼프 정부는 아랍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에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양다리 외교로 이-팔 분쟁의 궁극적 해결 대신 현상 유지에 주력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대 야망을 억누르고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인정하는 ‘두 국가 해법’을 원칙으로 이-팔 분쟁을 대했던 버락 오바마 정부와는 전혀 다른 선택이다. 미국의 중동 개입 상황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립주의 외교의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트럼프는 아랍권 지도자들과 정상회담을 이어 가고 있다. 3일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만난 데 이어 5일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을 워싱턴으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한다. 일정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이달 중에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도 첫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지난달 29, 30일 요르단에서 열린 아랍연맹정상회의 직후 열리는 이번 연쇄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미국의 친(親)이스라엘 행보에 대한 아랍권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아랍권을 달래기 위해 미국과 사우디 등 수니파 아랍 국가, 이스라엘이 함께 하는 중동 군사공동체 결성에 대한 진전된 논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 아랍연맹 정상회의에 참석한 지도자들은 이-팔 분쟁에서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대를 비판하며,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만장일치로 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친이스라엘 행보도 이어지고 있다. 니키 헤일리 주유엔 미대사는 2일 “이스라엘에 대한 편견에 반대한다”며 오바마 정부의 이스라엘 정착촌 반대 정책을 사실상 폐기할 뜻을 내비쳤다. 이스라엘 정부가 지난달 말 20년 만에 처음으로 요르단 강 서안지구에 새 정착촌을 건설하겠다고 공식 발표했을 때도 백악관은 오바마 정부와 달리 미지근한 반응을 내놓아 아랍권의 우려를 샀다.

트럼프 정부는 시리아 문제에서도 이슬람국가(IS)만 물고 늘어질 뿐 오바마 정부가 퇴진 대상으로 공언했던 바샤르 아사드 정권에 대해선 ‘정치적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며 사실상 공인해줬다. 러시아-이란-터키 3국의 중재가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평화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할 뜻을 밝히지 않으면서 미국의 중동 개입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을 이어 가고 있다. 시리아 반군 측은 2일 사우디 매체 알아라비야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 한 시리아의 정치적 해법은 없다”며 트럼프의 적극 관여를 요구했다.

트럼프의 양다리 외교는 임기 내에 미국의 중동 개입을 최소화하는 상황을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우선주의를 최우선시하는 현실적 선택이지만, 현상 유지만으론 장기적으로 분쟁을 끝낼 해결책을 도출할 수는 없어 지속 가능한 정책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중동에서 광폭 행보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러시아에 지역 패권을 완전히 넘겨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트럼프#중동#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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