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안보협력을 협상 카드로… EU “생명 갖고 장난치나” 발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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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협상 싸고 기싸움
메이 “협상 실패땐 안보협력 약화”… 英 의존도 높은 발칸국가 공략
EU “군사-정보력으로 노골적 협박”… 메르켈, 英의 동시협상 요청 거절

영국 정부는 30일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수천 개의 EU 법을 영국 법으로 대체하기 위한 ‘대(大)폐지법(Great Repeal Bill)’ 백서를 발간하며 결별 수순을 밟았다.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양측의 설전은 이미 시작됐다. 29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탈퇴 통보 서한을 받은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어차피 승자는 없다. 누가 타격을 덜 입느냐가 관건”이라며 사활을 걸 것임을 시사했다.

○ 영국 “유로폴도 탈퇴” vs EU “생명으로 장난치나”


메이 총리는 투스크 의장에게 보낸 탈퇴 통보 서한에서 “브렉시트 협상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범죄와 테러 등 안보 협력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해 논쟁을 점화했다. 메이는 서한에서 ‘안보(security)’라는 단어를 11번이나 사용했다.

메이는 29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정보기관의 정보 공유와 EU 경찰 조직인 유로폴 협력은 협상 패키지 중 일부가 될 것”이라며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EU 회원국들에 전과 같이 정보 접근을 허용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앰버 러드 내무장관은 “영국은 유로폴의 최대 기여국이며 우리가 떠난다면 우리 정보도 다 빼 올 수 있다”고 말했다.

EU 지도자들은 영국이 안보 협력을 협상 카드로 언급하면서 노골적인 협박을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유럽의회의 브렉시트 협상 책임자인 기 베르호프스타트 전 벨기에 총리는 “EU는 (영국 정부가) 군사 및 정보 분야에서의 강점을 협상 카드로 이용하려는 어떤 시도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메이 총리가 EU 탈퇴 협상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의회 내 사회민주당을 이끄는 잔니 피텔라 의원도 “사람들의 생명을 갖고 노는 상황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비난했다.

논란이 커지자 영국의 데이비드 데이비스 브렉시트장관은 30일 “안보로 EU를 협박하겠다는 의도는 없다. 협상에 실패해도 안보 협력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발 뺐다.

○ EU 온건파, 안보·무역 중시 vs 강경파, 시민 권리·예산 중시

영국 정부가 안보를 협상 카드로 들고 나온 건 EU 27개국 회원마다 서로 다른 속내를 파고들어 균열을 꾀하기 위한 것이다. 브렉시트 협상에 임하는 각국의 속내는 온도 차가 크다.

벨기에는 최근 잇따르는 테러와 관련해 MI5 등 영국 정보기관 의존도가 크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영국과 부드러운 협상을 원한다. 러시아의 군사 위협에 직면한 에스토니아 등 발칸 반도 국가들도 유럽 최대 군사대국 영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이들 국가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소속된 영국군이 파견돼 있다. 영국의 중요 무역 파트너인 스페인과 벨기에는 내심 최대한 빨리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한 무역 협상에 착수하기를 바라는 눈치다.

하지만 영국에 이주민을 많이 둔 폴란드(80만 명) 불가리아(6만 명) 오스트리아(2만5000명) 등은 영국 내 자국민의 권리 보호를 위한 확실한 보장책을 받아내야 한다는 강경파다. EU 선진국들과 격차를 좁히기 위해 사회간접자본(SOC), 교육 연구비 명목으로 수십억 유로를 EU로부터 지원받고 있는 폴란드 슬로베니아 등은 영국이 빠져나가 전체 EU 예산이 줄어들면 지원금이 줄어들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영국으로부터 최대한 많은 이혼 합의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브렉시트 이후 런던으로부터 빠져나갈 금융가 유치를 내심 바라고 있는 룩셈부르크 역시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우리 관계를 어떻게 끊어낼지를 명확하게 한 뒤에 우리의 미래 관계를 논의해야 한다”고 선(先)이혼, 후(後)무역협정 입장을 명확히 하며 메이의 동시 협상 요청을 거절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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