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시진핑, 다보스 포럼서 ‘美 우선주의’ 트럼프 정부 비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8일 14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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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가주석으로는 처음으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17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했다. 시 주석은 약 50분간에 걸친 연설 중 약 3분의 2 가량을 '경제 세계화'를 역설하는 데 사용했다. 직접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사흘 후인 20일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보호주의로 돌아가려는 것에 대한 비판을 숨기지 않았다. 미국이 주춤하는 사이 세계 경제 무대에서 미국을 제치고 새로운 지도국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 주석이 개방과 경제 세계화 등을 외쳤지만 정작 중국은 자국 시장에서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 등 반개방, 반세계화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미카엘 클라우스 주중 독일대사가 16일 독일대사관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에서 "중국의 경제정책은 실제적으로 세계화에 위배되고 있다"며 "중국은 언행을 일치시켜야 한다. 보호 무역주의 배격에 대한 정치적 선언이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시 주석은 '경제 세계화'의 필연성을 설명한 뒤 그럼에도 단점이 있기 때문에 개혁해야 하는데 중국이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보호주의로 회귀하려는 트럼프 정부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질서에서 중국이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시 주석은 '시대의 책임을 함께 지고, 세계 발전을 함께 추진한다'는 주제로 한 이날 강연에서 "과거에는 경제 세계화를 (노다지 같은) 알리바바의 동굴로 여기다가 지금은 (열면 안되는) 판도라의 상자로 취급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등 논쟁의 대상이 됐다"고 운을 띄웠다.

시 주석은 "빈곤 실업 소득격차와 지역내 충돌, 테러, 난민 등 많은 문제들이 경제 세계화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는 시각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수년간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수백만 난민, 많은 어린이들의 사망 등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들은 전란과 충돌, 지역 혼란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글로벌 금융위기도 경제 세계화에 따른 필연적 산물이 아니라 감독 체계의 부족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경제 세계화는 사회 생산력 발전의 객관적 요구와 과학기술 진보의 필연적 결과이지 누구나 특정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며 "경제 세계화야 말로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고 과학기술과 인류 문명의 진보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물론 경제 세계화도 양면성이 있어 특히 경제 하강기에 파이가 커지지 않고 혹은 적어질 때는 성장과 분배, 자본과 노동, 효율과 공평간 모순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참외도 쓴 꼭지가 있고, 대추도 가시가 있다'"는 옛말을 인용해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경제 세계화는 몽둥이로 때려 죽일 대상이 아니라 적응하고 잘 유도해야할 것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줄여 그 혜택이 모든 국가와 민족에게 퍼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중국도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세계 경제라는 대해(大海)로 뛰어들어 물먹어가며 배웠다"며 "세계 경제라는 대해는 피할 수 있는 것 아니다, 대해를 벗어나 작은 호수, 작은 개울에 자신을 가두려고 하는 것은 조류에도 안 맞고 불가능하다"고 경제 세계화를 옹호했다.

시 주석은 세계 경제 성장이 7년 내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가고 빈부격차 남북격차 등 많은 과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경제 관리 시스템에 대한 개혁을 주장했다. 신흥경제국가의 세계 경제 기여율은 80%가 넘는데 글로벌 경제 관리체계는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해 대표성과 포용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2010년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는데도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에 눌려 충분히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이는 시 주석이 곧이어 "세계 경제 체계의 변혁의 긴박성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 주석은 '대도(大道)는 천하 모든 사람들의 공공의 것'이라는 고전 속의 한 구절을 들어 경제 세계화 등 개혁된 국제질서 하에서의 발전은 모든 국가와 인민에게 공평하게 혜택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중국은 위안화 평가절하를 통해 수출 경쟁력을 올리지 않는다"고 강조해 트럼프가 환율 조작 국가로 지정하려는 것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또 파리 기후변화 협약을 잘 준수할 것이라고 한 것도 협약 파기를 언급하고 있는 트럼프를 겨냥했다.

시 주석은 "인류 역사에 평탄한 길은 없었지만 인류의 전진을 막지는 못했다"며 "어려움이 닥쳐도 자신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거나 믿음을 버리거나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며 "역사는 용감한 자가 창조한다"고 강조하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의 연설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 "서방 곳곳에서 세계화에 대해 회의가 높아지는 가운데 시 주석이 방어자로 나섰다"며 "세계 질서를 지키는 인심 좋은 강대국의 이미지를 심으려고 했다"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시 주석이 자신과 트럼프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고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방어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한편 클라우스 주중 독일 대사는 시 주석의 다보스 포럼 연설 하루 전에 올린 성명에서 "지난 수 십년간 중국 시장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모두 중국 파트너와 합자회사를 세워야 했는데 이는 통상 중국 기업, 특히 국유기업이 외국기술을 이전받도록 하려는 것으로 보호주의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당국이 최근 신에너지 자동차 영역의 기술이전 규정을 강화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베이징=구자룡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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