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땅 맘대로 못밟는 대만총통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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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 중남미 순방길 美경유… 뉴욕은 방문 못해 트럼프 면담 무산
中 견제로 美동부는 ‘금단의 땅’

 중남미 4개국 순방 계획(7∼14일) 도중 미국 뉴욕에 들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측근들을 만날 것으로 기대됐던 차이잉원(蔡英文·사진) 대만 총통이 끝내 뉴욕은 물론이고 미 동부 지역을 우회하는 슬픈 ‘경유 외교’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일 “(차이 총통이) 7일 휴스턴, 13일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 중남미를 오간다”고 전했다. 차이 총통이 지난해 12월 2일 트럼프 당선인과 전화 통화를 한 뒤 일각에서는 뉴욕 경유설이 제기됐다. 이후 차이 총통 일행이 미 동부를 경유하되 뉴욕은 가지 않는다는 설이 나왔다가 아예 동부지역마저 우회한다는 것이다.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 이래 역대 대만 총통은 비행기 중간 급유 등을 이유로 미 본토에 들르면서 최대한 수도 워싱턴 등 동부지역을 우회하는 굴욕적인 ‘눈치 보기 외교’를 펼쳐왔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반한다며 대만 지도자들의 미국 경유에 반발했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도 ‘총통을 동행 취재하는 대만 언론은 미 영토 내 총통 활동은 보도할 수 없다’는 ‘보도 준칙’까지 만들어 적용해 왔다.

 친중파였던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도 2008년 8월 첫 중남미 방문 당시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등을 경유하면서 교민들조차 만나지 않아 ‘투명인간 방미’라는 비판을 받았다. 2009년 6월에는 경유지인 샌프란시스코의 호텔 방에서 나오지 않고 전화만 돌려 ‘전화 외교’ 하러 다닌다는 소리를 들었다.

 반중파인 국민당 리덩후이 전 총통은 1994년과 1997년 등 두 차례 미국을 거쳐 갔지만 본토가 아닌 하와이를 경유했다. 그가 1995년 6월 개인 자격으로 비자를 받아 모교인 코넬대를 방문하자 중국은 보복 조치로 대만해협에서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리다오위(李道豫) 주미 중국대사를 만나 ‘하나의 중국’ 정책에 변함이 없다는 다짐을 해야 했다.

 반중 독립 성향의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은 2006년 5월 미국이 중국의 반발을 의식해 알래스카를 경유하라고 하자 이를 거부했다. 그 대신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을 거쳐 오갔다. 가고 오는 데 각각 24시간과 37시간이 걸렸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대만#차이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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