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성동기]트럼프-푸틴 브로맨스와 한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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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기 국제부 차장
성동기 국제부 차장
 같은 날 독일 베를린과 터키 앙카라에서 일어난 두 건의 테러로 유럽이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 테러와 올해 3월 벨기에 브뤼셀 테러 그리고 7월 프랑스 니스 테러 이후 대(對)테러 능력을 강화했지만 또다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앙카라의 한 사진전시회에서 축사를 하던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가 총격에 피살된 사건은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세계 경찰’을 자처하며 지구촌 분쟁에 개입해 온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가 테러 타깃이 된 것도 이례적이다. 세계 문제 대응에서 러시아의 역할이 커진 것을 보여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전임 정부로부터 2개의 전쟁(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을 물려받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3번째 중동전쟁 개전을 꺼렸다. 6년째 이어진 시리아 내전에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미국이 주저하는 틈을 비집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시리아 내전에 깊숙이 개입했다. 막강한 공군력으로 폭탄을 퍼부어 시리아 정부군의 알레포 탈환을 도왔다.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푸틴을 꼽을 정도다.

 해킹 의혹으로 미 대선판을 뒤흔들어 놓은 푸틴의 영향력은 이제 아시아 쪽으로도 뻗치고 있다. 푸틴은 지난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뒀다. 아베 총리가 자신의 고향으로 초대해 ‘온천 외교’를 펼치며 지극정성을 다했지만 푸틴은 아베가 원하던 북방 영토(쿠릴 4개 섬) 반환 논의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반면 3조 원 규모의 경제협력 선물만 다 챙겼다.

 푸틴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 다음 달 20일 푸틴을 존경한다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취임한다. 두 사람의 브로맨스(남자 간 친밀한 관계)는 유명하다. 그동안 러시아 견제에 공들여 온 미국이 러시아와 손잡는다면 한반도 주변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미국이 러시아와 함께 중국을 견제하는 ‘연아제화(聯俄制華)’가 현실화된다면, 그리고 대선 공약대로 본격적인 중국 압박에 나선다면 한국은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까.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자유세계 지도자로는 사실상 유일하게 톈안먼 성루에 올랐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결정을 놓고 그동안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유무형의 압력을 받았다. 앞으로 닥칠 압박은 이보다 훨씬 더할 것이다.

 일본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뉴욕에서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트럼프와 회담을 가진 아베 총리는 취임 직후인 다음 달 말 미일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쓰나미처럼 닥쳐올 위기에 둔감한 듯하다. 한 경제계 인사는 트럼프 측 인사를 만난 사람에게 들었다며 이렇게 전했다. “도대체 한국에선 누구와 얘기해야 하느냐.” 한국 상황이 워낙 혼란스러워 대화 상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8주째 이어진 촛불시위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심리에 관심이 쏠린 사이 한반도 주변 안보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일부에서 주장하듯 사드 배치 원점 재검토,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폐기,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화 등으로 미국, 일본과 척진다면 우리는 누구와 손잡아야 할까. 차기 미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트럼프다. 북핵 위협으로부터 주한미군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드 배치 합의조차 뒤집으려는 한국을 이해할지 의문이다. 그래서 내년 대선은 중요하다. 실정은 따끔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누가 이 나라를 다시 반석 위에 올려놓을 책임 있는 리더인지를 가리는 것은 국민의 책무다.
 
성동기 국제부 차장 esprit@donga.com
#푸틴#트럼프#촛불시위#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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