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中에 시장경제지위 부여’ 놓고 시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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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2001년 WTO가입때 ‘15년 유예’… 인정땐 反덤핑관세 매기기 어려워
유럽의회, 반대 결의안 채택… 中 “MES 인정은 EU의 의무” 반격
英-獨은 찬성… 伊는 강력 반대

유럽 주요국이 지난해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때에 이어 또다시 ‘차이나 머니의 힘’ 앞에서 분열하고 있다. 이번엔 중국에 ‘시장경제지위(MES)’를 부여하는 게 타당하냐는 것이 쟁점이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최장 15년간 MES를 받지 못하는 조건을 받아들였다. 당시에는 WTO 가입으로 세계무역 체제에 편입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중국은 유예 기간이 끝나는 올해 말에는 ‘자동적으로’ 시장경제 지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럽연합(EU) 미국 일본 등 주요 서방 선진국들은 이에 반대한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시행하는 중국은 국가의 시장 개입이 과도하게 이뤄지고 있어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중국이 MES를 획득하면 EU가 중국산 제품에 반(反)덤핑 관세를 매기기 어렵게 된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 기준이 현재와 같은 ‘EU 생산자의 생산비’가 아니라 이보다 낮은 ‘중국 국내 가격’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EU 회원국들은 반덤핑 관세장벽이 무너질 경우 중국산 철강 제품과 태양광 패널 등이 물밀듯이 들어와 자국 기업들이 초토화될 것으로 우려한다.

유럽의회는 12일 중국에 대한 MES 부여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채택했다. 결의안은 “중국은 정부 보조금 지급 관행과 투명성 결여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경제 체제를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유럽의회는 또 중국 상품의 저가 공세에 대항해 반덤핑 조사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중국 상품에 대한 관세 인하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EU 집행위와 28개 회원국은 올해 안으로 중국에 MES 부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었으나 승인권을 가진 유럽의회가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켜 연내 결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유럽의회 결의 다음 날 “WTO 가입 당시 부여하기로 한 지위를 주는 것은 EU의 의무”라고 주장하며 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개별 격파’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AIIB 창설을 앞두고 영국의 가입을 이끌어내면서 EU 회원국들의 단결을 흔들었던 전략이 다시 나오는 모습이다.

영국은 중국산 철강 공세로 대형 회사가 문 닫는 등 피해가 크지만 ‘중국 위안화의 유럽 허브’ 등이 당근이 돼 이번에도 먼저 중국 손을 들어줬다. 네덜란드와 북유럽 3국도 찬성, 독일은 조건부 찬성인 반면 이탈리아는 극력 반대라고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가 16일 보도했다. 중국은 개별 국가와의 협상을 통해 이미 한국 등 80여 개국으로부터 MES를 얻어냈다.

중국의 수출경쟁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어 MES 획득은 경제적인 이유로도 필요하게 됐다. WTO에 가입해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됐지만 중국이 MES를 얻지 못한 것은 국가 위상과도 관련된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이 유럽에서 MES 획득에 성공하느냐 못 하느냐가 차이나 머니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 시장경제지위(MES·Market Economy Status)

한 국가의 원자재 및 제품 가격, 임금, 환율 등이 정부가 아닌 시장에 의해 결정된다고 판단할 때 교역 상대국이 인정하는 것. 과거 사회주의 체제 국가의 덤핑 수출을 규제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MES를 인정받지 못하는 국가는 자국 국내 가격이 아닌 MES가 부여된 제3국 가격을 기준으로 반덤핑 조사를 받게 돼 수출품에 고율의 반덤핑 관세가 부과된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u#시장경제지위#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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