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 볼라, 쿠바”… 오바마, 아바나 공항서 트윗으로 첫 인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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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통령 88년 만에 방문

“쿠바, 잘 지냈어요(Que bola Cuba)?”

20일(현지 시간) 오후 4시경.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자신을 태운 ‘에어포스 원’이 쿠바 수도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공항에 착륙한 뒤 트위터에 스페인어로 이렇게 썼다.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쿠바 영토에 착륙한 첫 미국 대통령으로서 쿠바 국민들에게 보내는 인사였다. 88년 전인 1928년 미주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쿠바를 방문했던 캘빈 쿨리지 대통령은 군함을 타고 카리브 해를 건넜다.

○ 외교 업적에 화룡점정 찍으려는 오바마

아바나에는 봄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공항에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은 우산을 받쳐 들고 비행기 트랩을 내렸다. 하얀 이를 훤히 드러내며 웃는 모습에서 이란 핵협상에 이어 1961년 단교(斷交)한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까지 이뤄냈다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의 뒤에는 부인 미셸 여사와 장모인 메리언 로빈슨 씨, 봄방학 중인 딸 말리아, 사샤 양도 함께 있었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등 40명의 정치인도 함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도착 직후부터 아바나 곳곳을 누볐다. 미주 대륙에 남아있는 마지막 냉전 구도를 깨고 쿠바를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동참시키기 위한 행보였다. 숙소인 멜리아 아바나 호텔로 쿠바 주재 미국대사관 관계자들과 현지 직원들을 불러 격려하면서 이번 방문으로 미-쿠바 관계 정상화를 이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대사관 재개설 전부터 미국 이익대표부에서 일해 왔던 쿠바 직원들을 가리키며 “이들이야말로 미국과 쿠바를 하나로 묶어왔다”며 감사를 표했다. 일부 쿠바 직원이 자녀를 데리고 오자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고색창연한 아바나의 명물인 구도심을 걸어서 둘러본 뒤 아바나 대성당을 찾아 이번 방문을 성사시키는 데 막후에서 기여한 하이메 오르테가 추기경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대성당 앞에서는 쿠바 경찰의 경계가 삼엄한 가운데 수백 명의 현지인이 나와 “오바마, 오바마”를 연호했다. 낡은 TV 안테나를 고쳐 오바마 대통령의 공항 도착을 생중계로 지켜봤다는 로라 페레스 씨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 전면적 개방은 경계하는 카스트로

오바마 대통령은 21일 오전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미-쿠바 국교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54년간 이어져 온 대(對)쿠바 금수 조치 등 경제 제재 해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방문에 제록스, 페이팔 등 미국 기업 관계자 10여 명을 대동한 것도 쿠바의 경제 개방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쿠바는 라울의 형인 피델 카스트로 집권 때보다는 경제 개방을 확대하고 있다. 제한적이지만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확산되고 국민의 40%인 1100만 명은 국영 기업이 아닌 민간 부문에서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라울 정권도 갑작스러운 개방으로 체제 자체가 불안정해지는 데는 경계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쿠바 당국은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 전 정치범 부인들의 모임인 ‘레이디스 인 화이트’ 회원 등 반정부 인사 수백 명을 연행하거나 일시 구금했다. ‘인권과 국가 화해를 위한 쿠바 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엘리사르도 산체스 씨도 19일 아바나 공항에서 3시간 반 동안 구금됐다. 그는 NYT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으로 카스트로 정부가 일시적으로 정치적 자유를 허용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다”며 “쿠바가 하루아침에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런 점을 감안해 22일 대중 연설에서 실질적 개방을 위해서는 쿠바 당국이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고 인권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쿠바 정부의 반대에도 반정부 인사와 면담하고, 미국적 상업 스포츠의 상징인 메이저리그 야구팀(탬파베이 레이스)과 쿠바 국가대표팀 간의 시범경기를 참관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오바마식 쿠바 개혁 프로젝트는 이제 막 시작했다. 성공한다면 마지막 남은 고립 국가인 북한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쿠바#오바마#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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