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반성하는 日王의 ‘위령 여행’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필리핀 방문 ‘111만명 희생’ 추모
2015년 팔라우 이어 ‘반성 행보’ 계속… 고령에도 2차대전 격전지 찾아
일각선 “아베 우경화 견제 의도”… 위안부 피해자들은 항의 시위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이번 필리핀 국빈 방문은 지난해 6월 일본을 국빈 방문한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의 강한 요청으로 이뤄졌다. 아키노 대통령은 어머니인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과 함께 1986년 일본을 찾아 일왕을 만난 인연이 있다.

하지만 일왕의 일정을 보면 이번 방문은 아키노 대통령과의 만남보다는 태평양전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목적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 팔라우 방문의 ‘후속편’인 셈이다. 당시 일왕은 비행기를 타기 전 “태평양에 떠 있는 아름다운 섬들에서 이렇게 슬픈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현지에 도착해선 미국과 일본 위령비에 모두 헌화했다.

일본에서 일왕이 외국을 방문하는 것은 연 1회 정도에 불과하다. 올해 83세로 고령인 일왕의 경우 2014년에는 아예 해외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전후 70년을 맞은 지난해부터 다시 제2차 세계대전 격전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번 필리핀 방문 배경에 대해 공보 담당인 다카시마 하쓰히사(高島肇久) 외무성 참여(자문역에 해당)는 “전쟁은 되풀이돼선 안 되며 이에 대해 강한 감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왕이)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일본 언론은 이번 방문을 ‘위령의 여행’이라고 부르고 있다. 태평양전쟁에서 희생된 필리핀인은 111만 명, 일본인은 51만8000명에 이른다.

일왕의 행보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우경화 행보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왕은 공식석상에서는 처음으로 지난해 8월 15일 열린 전몰자 추도식에서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12월 생일 기자회견에서는 “과거 전쟁에 대한 것을 충분히 알고 깊이 생각하는 것이 일본의 장래에 지극히 중요하다”고 말했고 민간인 희생을 언급할 때 감정이 고조돼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일왕의 이번 방문에 대해 필리핀 언론은 호의적인 편이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만찬이 열리는 대통령궁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일왕과의 접견을 요구했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국가 배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과의 경제협력을 우선시하는 아키노 대통령은 지난해 일본 방문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노력을 평가한다는 반응을 보여 피해자들의 분노를 샀다. 피해자 단체인 ‘릴라 필리피나’에는 위안부 피해자 174명이 등록돼 있었으나 지금은 고령으로 104명이 사망해 70명이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아키히토#일왕#일본#과거사 반성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