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인권범죄 레드라인’ 설정… 국제사회 개입근거 마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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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北인권조사위 보고서 주요 내용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북한의 인권침해 실태와 대응 방안을 담은 첫 보고서를 17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북한의 인권침해가 3대에 걸친 수령(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과 국가안전보위부 등 북한 정부에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국제법상 북한 인권침해에 대한 개입 근거를 확실하게 마련했다는 의미도 크다. 다음 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인권이사회의 결의안 채택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논의될 실질적인 후속 조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북한 인권침해 근절을 위한 교과서 마련


로버타 코언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 공동의장은 성명을 내고 “사상 처음으로 유엔 기구가 북한 정부 차원의 반인권범죄를 인정하고 지도자에게 책임을 물었다”며 “이제는 국제사회가 박해받는 북한 주민들을 보호하고 가해자에게 정의를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도록 했다.

조사위는 국가 정책의 이름으로 자행된 ‘인도주의에 관한 범죄’로 △정치범수용소 △탈북을 기도한 사람에 대한 인권침해 등을 적시했다. 이어 “북한 정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북한 주민을 ‘인도주의에 관한 범죄’로부터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2005년 유엔정상회의 결의에서 국제사회 규범으로 확립된 ‘보호책임(R2P·Responsibility to People)’을 언급한 것이다. 유엔은 2011년 3월 리비아 공습을 결정할 때 이 원칙을 근거로 들었다.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학살과 인권침해로부터 리비아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었다. 보고서 발표에 앞서 외교부 당국자는 “(R2P는) 리비아와 코트디부아르 내전 때 적용됐다. 안보리에서 어떻게 공감대를 형성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 실질적 조치 가능할까

지난해 3월 구성돼 1년간 활동을 펼친 COI는 이번 보고서에서 책임자 처벌을 위한 구체적 방안도 제시했다. 수령을 포함한 개인의 형사책임 추궁이 필요하다고 못 박았다. 그 방법으로 유엔 안보리가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할 것을 권고했다. 안보리는 다르푸르 학살을 자행한 수단 정부의 책임자를 ICC에 제소했으며 1994년 르완다 대학살의 책임자 등도 제소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김정은 등 북한 정권의 책임자가 ICC 법정에 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유엔에서 북한의 후견자 역할을 해온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7일 정례브리핑에서 “인권 문제를 ICC에 회부하는 것은 일국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COI가 중국에 탈북자 재송환 금지와 보호 의무를 요구한 것도 선언적 의미에 그칠 공산이 크다. 탈북자를 국제법상의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은 김정은 체제 출범 뒤 탈북자의 북한 송환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중국은 COI의 요구를 주권 침해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0월 29일 유엔총회에서는 중국 관료들이 “불법 월경자를 중국 법에 따라 처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반면 마이클 커비 유엔 북한인권위원장이 강제북송을 반대하면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COI의 권고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향후 후속조치를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 일각에선 유엔이 북한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국제사회의 ‘보호책임’을 주장한 만큼 대북 제재가 핵에서 인권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도 예상한다. 다음 달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COI의 활동 연장과 권고 내용을 이행할 실행 기구가 논의될 예정이어서 유엔의 북한 인권 개선 노력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 북한의 즉각적인 반발


북한은 이날 ‘전면적으로’ 거부한다고 밝혔다.

스위스 제네바의 북한 대표부는 로이터통신에 보낸 2쪽 분량의 성명에서 “유럽연합(EU)과 일본 입장에서 인권을 정치화한 산물이고 미국의 적대정책과 연합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은 보고서가 언급한 인권 침해 사례가 실제 없다고 다시 확인한다”며 “인권 보호를 빌미로 정권을 교체하려는 시도와 압박에 끝까지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뉴욕=박현진 witness@donga.com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 정성택 기자
#북한 인권범죄#국제사회#유엔#C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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