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헌재도 파업… 親무바라크 vs 무르시 기싸움 어디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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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부 시위대가 업무 방해”… 사법기능 93년만에 전면마비
15일 새헌법 국민투표 분수령

지난달 22일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새 헌법 선언문 발표로 이집트에서는 대규모 유혈시위가 벌어지는 등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새 헌법 선언문에 반대해 대법원과 지방법원이 파업을 시작한 데 이어 2일에는 헌법재판소마저 파업을 선언했다. 사법부 전면 파업은 1919년 영국의 식민 지배에 항거해 단행된 이후 93년 만이라고 AP통신 등 외신은 전했다.

이집트 헌재는 이날 예정됐던 제헌의회 해산 여부를 다루는 재판을 무기한 연기하고 파업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헌재는 “친(親)무르시 대통령 시위대의 방해로 재판관의 재판정 출입마저 불가능하다”면서 “신성한 법정의 독립이 훼손된 이집트 사법 역사 최악의 날”이라며 분노를 표했다.

사법부가 이렇듯 강경한 태도로 나선 데에는 무르시 대통령과의 기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전술적 판단’이 숨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스민 혁명 이후 무슬림형제단 등이 주도권을 쥔 입법부나 행정부와 달리 사법부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시절 임명된 세력들이 여전히 주요 직책을 장악하고 있다.

무르시 대통령이 발표한 새 헌법 선언문의 ‘독소조항’이 국민적 항거에 부닥치자 사법부는 군부의 무바라크 잔존세력과 함께 세력을 회복할 수 있는 호기로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재판소 앞을 점령한 시위대의 위협”을 파업 이유로 들었지만 현장에선 경찰 통제 아래 차분하게 가두시위가 벌어지고 있을 뿐이고 재판관의 출입 역시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사법부의 구(舊)세력이 꼼수를 부릴 빌미를 제공한 것은 무르시 대통령이다. 그가 발효한 새 헌법 선언문은 사법기관의 의회 해산권을 제한하고 대통령령이 최종 효력을 갖는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국민들은 ‘파라오 헌법’이라며 반발했다.

독립 성향의 알와탄과 알마스리 알윰 등 이집트 일부 신문사는 새 헌법에 항의해 4일자 신문 발행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르시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정당과 단체들은 4일 대통령궁 앞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일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집트 사태는 무르시 대통령이 15일 실시하겠다고 선언한 새 헌법 선언문에 대한 국민투표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집트는 전통적으로 사법부가 선거나 투표를 감독하지만 전국 판사들의 대표조직인 판사회는 헌재 파업과 동시에 선거 감시 업무도 거부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새로운 감시기구를 조직해 투표를 일정대로 진행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중동 문제 전문가인 캐나다 오타와대 피터 존스 교수는 “현재 이집트의 통치 방식은 무바라크 시대와 마찬가지로 국민 의사를 반영하지 않는 권위적 스타일을 답습하고 있다”며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세력은 그 어느 쪽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집트#무라바크#무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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