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부흥 이끈 ‘전자 제국’의 몰락… 열도 불안-초조감 증폭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 소니 신용 ‘정크’ 추락 충격

파나소닉을 시작으로 줄줄이 이어진 일본 전자업계의 어두운 전망은 일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일본 국민과 함께 전후 부흥의 역사를 함께 써온 이 기업들이 일본 사회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이 정치적 우경화의 길을 걷는 배경으로 이 기업들의 침몰을 거론하는 분석도 많다. 세계시장을 석권하며 ‘Japan As Number One(세계 제일의 일본)’이란 찬양을 받던 이 기업들은 이제 패배자라는 불안감과 초조감을 외부에 표출하고 있다.

소니와 파나소닉의 신용등급 강등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파나소닉은 당초 2012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 흑자를 전망했으나 지난달 31일 7650억 엔(약 10조500억 원)의 당기순익 적자가 예상된다고 고백했다. 2년 연속 7000억 엔 이상의 적자가 나 최근 20년분의 순이익을 모두 까먹는 꼴이 됐다. 피치는 파나소닉의 재무구조에 대해서도 상당 기간 실질적인 개선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니는 7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올해 연간 매출액도 당초 전망보다 3%가량 내려 잡았다. 3개 기업의 주가는 올해 들어 모두 30여 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의 간판 전자회사들이 10년 전인 2002년보다 매출액과 이익이 늘어난 것에 비해 일본 기업들은 줄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일본 전자 삼총사의 전망은 더 심각하다. 피치의 지적대로 이제는 실적 악화가 아니라 재무 리스크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고 있다. 파나소닉은 매출이 7조 엔대에 이르는데도 올해 상반기(4∼9월) 현금흐름이 230억 엔에 불과하다.

소니라고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니다. 올해 실적 전망을 일단 흑자로 유지하긴 했지만 7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흑자 전망도 보험, 은행 등 금융사업에 기댄 것으로 본업인 전자사업은 적자를 면키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샤프는 올 회계연도에 4500억 엔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지분 매각과 인력 감축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고 있지만 회생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피치는 올해 2월에 낸 보고서에서 이들 3개 업체를 ‘추락하는 천사’라고 불렀다. 후발 주자인 삼성전자, LG전자와의 경쟁력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가운데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일본 언론은 이 기업들의 실패 원인에 대해 ‘갈라파고스 증후군’을 꼽고 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 독특한 생태계가 형성된 것처럼 세계의 흐름을 외면한 채 국내 시장에만 매달렸다는 것이다. 일본의 한 언론인은 “비단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정치 흐름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꼬집었다.

전자 삼총사의 몰락에 일본이 받는 충격은 단순한 경제문제 차원이 아니다. 이 기업들의 성공 신화는 패전국 일본이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과정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소니는 ‘워크맨 신화’를 쓴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1921∼1999) 전 회장이 창업한 회사로 일본의 기술과 혁신의 대명사였다. 모리타 회장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본유신회 대표와 함께 미국을 겨냥해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파나소닉은 일본인이 ‘경영의 신(神)’으로 추앙하는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1894∼1989)가 창업한 마쓰시타전기의 후신이다. 샤프는 창업자 하야카와 도쿠지(早川德次·1893∼1980)가 1912년 창업한 회사로 ‘샤프펜슬’을 비롯해 세계 최초로 탁상용 전자계산기와 카메라폰을 개발한 기업이다.

도쿄=배극인·박형준 특파원 bae2150@donga.com
#소니#일본#파나소닉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