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미경]美 민주당에 ‘정부’는 더러운 단어… 공화당의 큰정부 비난에도 무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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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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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역사적으로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국가 번영과 경제 성장이라는 같은 목표를 위해 각각 자유로운 기업 활동의 보장과 시장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라는 대조적 해법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올해 미 대선에서 이런 이분법적 공식은 여지없이 깨지고 있다.

‘큰 정부’를 공격하고 기업 활동을 중시하는 공화당의 방침은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반면 과거 정부의 역할을 옹호해 온 민주당에서 ‘정부(Government)’는 전당대회 등 공식적인 발표에 사용하지 말아야 할 ‘회피 단어’ 1순위가 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6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 ‘루스벨트식 실험’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케인스식 해법’을 에둘러 말하면서 정부의 역할이라는 단어를 비켜 간 것이다. 그는 4월 AP통신이 주최한 토론회에서도 “나는 정부가 결코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 외에도 “나도 사실은 기업 활동 지지자”라고 ‘커밍아웃’을 하는 민주당 정치인이 늘고 있는 것은 빠르게 보수화하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7월 폭스뉴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4%가 ‘정부가 경기침체의 원인’이라고 답했다. ‘정부가 경기침체의 해결책’이라는 응답은 23%에 불과했다. 또 75%는 ‘미국인들이 정부에 너무 의존한다’고 답했다.

줄리언 젤리처 프린스턴대 공공정책학 교수는 “미국은 원래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며 정부의 과도한 역할을 경계했지만 요즘처럼 반(反)정부 분위기가 심했던 적은 없다”고 진단했다. 공영방송 NPR는 2일 “공화당은 정부를 비난하기 바쁘고 민주당은 이를 피해 나가기 바쁘다”며 “정부는 ‘더러운 단어(Dirty Word)’가 됐다”고 지적했다.

1930년대 대규모 경기 부양과 사회 지원 프로그램으로 대공황을 이겨 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정부의 시장 개입에 대한 지지는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지미 카터 대통령 당시 정부의 섣부른 개입으로 경기 침체가 심화하면서 미국인들의 정부에 대한 시각은 변하기 시작했고 1981년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정부가 문제의 근원이다”라며 큰 정부 비판론에 불을 붙였다.

1993년 취임한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도 “큰 정부의 시대는 지났다”며 여기에 가세했다. 2000년대 테러 위협과 경기 침체로 미국인들의 보수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정부 비판론은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정부는 규제, 간섭, 관료주의 등 비효율과 일맥상통하는 단어가 됐다.

전문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현직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공화당과의 어젠다 전쟁에서 밀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미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는 민주당의 핵심 가치인 정부 역할론과 큰 정부 비판론의 관계를 정교하게 정립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mickey@donga.com
#미국 대선#공화당#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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