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 지지 받는 野 공세에… ‘빈민대부’ 쫓겨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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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라과이 대통령 탄핵
농민시위 중 17명 사망 빌미… 야당, 탄핵안 전격 가결
아르헨 “의회 쿠데타” 비난… 브라질 등도 자국대사 소환

2008년 대선에서 변화를 외치며 61년간 지속된 보수 정당의 지배를 무너뜨렸던 페르난도 루고 파라과이 대통령(61)이 22일 탄핵을 받고 사임했다. ‘빈자의 아버지’로 불리며 서민들로부터 두터운 지지를 받던 그를 거대 농장주들의 지지를 받는 야당이 권좌에서 끌어내는 데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그의 탄핵을 불러온 사건은 일주일 전 수도 아순시온 인근 쿠루과티에서 일어났다. 농장주가 자신의 농장에 있는 150여 명의 소작농을 쫓아내려고 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농민들이 충돌해 17명이 사망하고 80여 명이 다친 것. 사건 직후 내무장관과 경찰총수가 사퇴했지만 야당인 콜로라도당은 사고 책임을 물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했다.

탄핵안 처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하원은 21일 찬성 76표, 반대 1표로 탄핵안을 통과시켰고 상원도 22일 찬성 39표, 반대 4표로 탄핵안을 승인했다. 변론을 위해 투표를 18일 뒤로 연기해 달라는 루고 대통령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통령직은 페데리코 프랑코 부통령이 승계했고 차기 대선은 내년 4월 치러진다.

○ 야당들에 쫓겨난 ‘빈자의 아버지’

사제 출신인 루고 대통령은 파라과이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산페드로에서 주교로 재직하며 빈민 운동에 앞장섰다. ‘빈자의 아버지’라 불리며 신망을 얻은 그는 2006년 기득권층의 이익만 챙기는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고 2008년 대선에서 41%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루고 대통령의 재임 기간은 순탄치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재임 기간 내내 거대 야당의 힘에 눌려 ‘절뚝거리는’ 정치를 해 왔다고 전했다. 대법원 판사 임명은 물론이고 수력발전 댐 건설 책임자를 임명할 때도 의회에 발목을 잡혔다.

루고 대통령과 연정을 이뤘던 프랑코 부통령의 자유당(PLRA)이 2009년 연정을 깬 후에는 의회에서의 입지가 더욱 위축됐다. 콜로라도당이 상·하원의 1당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2당이었던 자유당도 루고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리면서 거대 야당이 만들어진 것. 대통령이 소속된 당 ‘변화를 위한 애국동맹(APC)’은 하원엔 1석이 있고, 상원엔 의석이 없다.

주로 농장주나 기득권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야당들은 군부독재였던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정부가 대농장주들에게 편법 증여한 토지를 빈농 9만여 가구에 분배해 주겠다는 루고 대통령의 대선 공약 실천을 막았다. 여기에 그와의 사이에 아이가 있다고 주장하는 여성 4명이 나타났고, 그중 한 여성은 16세 때 주교였던 루고 대통령과 성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았다고 주장해 그를 더욱 곤경에 몰아넣었다.

탄핵안에 대한 상원 투표 결과가 발표된 직후 루고 대통령은 회견을 열고 “파라과이 민주주의가 상처를 입었다”고 말한 뒤 대통령궁을 떠났다. 24일 지지자들과 함께 가두시위를 벌인 그는 “의회에서 쿠데타가 벌어졌다”면서도 지지자들에게 평화적인 시위를 당부했다.

○ 중남미국들 “탄핵은 의회 쿠데타”

중남미 국가들은 파라과이의 대통령 탄핵을 두고 비난을 쏟아냈다. 아르헨티나 외교부는 23일 “파라과이의 대통령 탄핵은 민주주의의 질서를 파괴한 것”이라며 파라과이 내 자국 대사를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파라과이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브라질과 우루과이도 파라과이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했다.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 정상들도 파라과이의 새 정부를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미국 국무부는 “파라과이의 안정을 바라며 사태를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 상황이 악화되자 프랑코 신임 대통령은 중남미 국가들에 대사를 보내 상황을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파라과이#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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