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국주의 저주’ 中 지도층…자녀는 죄다 미국 유학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20일 14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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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내정된 시진핑 부주석의 딸 시밍쩌는 2010년 하버드대에 입학하면서 해외 유학파 '태자당'(Chinese princelings)의 긴 대열에 합류했다.

중국의 유력 공산당 지도자들이 미국의 가치를 깎아내리면서도 자녀들은 미국 대학에 유학 보내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WP)가 19일(현지시간) 지면 한 면을 통째로 할애해 심층보도했다.

2010~2011학년도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은 15만7558명으로 지난 15년간 4배로 늘었다. 중국 고위 관료의 자녀는 일반 중국인 유학생과 달리 주립대에 거의 가지 않고 학비가 엄청나게 비싼 일류 사립대에 몰려드는 게 특징이다.

1949년 중국 공산당에 권력을 쥐어준 평등주의 이상과는 적나라하게 배치되는 것이다.

최고 지도부인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반미 사상이 가장 깊이 스며들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상무위원 9명 중 적어도 5명이 자녀나 손주를 미국에서 공부시켰거나 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학비를 대줄까.

하버드대는 4년간 수업료와 생활비로 수십만 달러가 들지만 학생 개개인의 자금 출처나 입학 허가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한다.

1989년 6월 톈안먼 사태 때 시위대에 대한 군 공격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숙청돼 가택 연금된 자오쯔양과 그의 후계자인 장쩌민의 손주들도 하버드대에서 수학했다.

자금 출처와 관련해 공공연하게 반응한 고위층 자녀는 충칭시 보시라이 전 당서기의 아들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 재학 중인 보과과가 유일하다.

그는 하버드대 학생 신문인 '크림슨'을 통해 부정축재 의혹에 대해 해명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가족의 이름을 사용한 적이 결코 없고 페라리를 몰아본 적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해외 유학 자금은 독립적으로 따낸 장학금과 성공한 변호사이자 작가인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과과의 모친 구카이라이는 보 가족의 사업 고문이던 영국인 닐 헤이우드의 죽음에 연루돼 어딘가에 구금돼 있다.

해임되기 전 보시라이의 공식 연봉은 2만 달러 미만이었지만, 보과과는 연간 학비가 4만8000달러인 영국 런던 해로우 스쿨을 다닌 데 이어 수업료로만 한 해 2만5000달러를 넘게 내는 옥스퍼드에서 수학했고 학비와 생활비로 매년 7만달러 이상이 필요한 케네디 스쿨에 적을 두고 있다.

마오쩌둥 주석 시절 외교부장이던 차오관화의 의붓딸로 뉴욕주의 명문 바사대학 출신인 홍후앙은 "이것은 가진 자와 없는 자(무산계급)의 문제"라며 "중국의 인맥이 미국의 인맥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초기 해외유학파인 그는 "제대로 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제대로 된 학교를 다녀 가문의 영광을 이어야 한다는 엘리트주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의 미중관계센터 오빌 셸 소장은 하버드대나 동급 아이비리그의 졸업장은 중국 엘리트에게는 '사회적 지위의 궁극적 상징'이며 에르메스나 에르메네질도 제냐 같은 매혹적인 상표로,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자기를 올려놓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톱 브랜드 대학의 유혹이 너무 강해 잠깐 이름만 걸어놓는 경우도 허다하다.

리펑 전 총리의 딸 리샤오린 중국전력국제유한공사 동사장은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스쿨 객원 연구원을 지낸 것을 한참 자랑하고 다녔다.

MIT는 리샤오린의 기록은 보름간 7500달러를 내는 비학위 단기과정에 등록한 게 전부라고 밝혔다.

일부 학생의 일탈이 정치문제화하기도 한다.

보과과가 옥스퍼드대 졸업 학년에 파티에 빠져 공부를 게을리하다가 정학될 위기에 처하자 중국 대사관이 3명의 대표단을 구성해 학교 측에 파견했다.

권력 4위이자 서양 방식을 '오류 투성이'라고 비난하는 자칭린 정협 주석의 스탠퍼드대 재학생 손녀도 명품 캐럴리나 헤레라를 입고 있는 사진이 온라인에 실리기도 했다.

이런 현상이 중국 공산당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중국 인터넷 등에는 "관료들은 미국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저주하면서도 처자식은 이미 노예로 이민 보냈다"는 등의 블로그나 댓글이 자주 등장한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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