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은 썼지만 너무 튀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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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패션월간지 ‘알라’ 작년 창간 후 선풍적 인기… 종교계 “문란하다” 폐간운동

뜨거운 조명, 쉴 새 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맘껏 자태를 뽐내는 늘씬한 여성 모델, 여러 차례 갈아입는 고가의 명품 의상들….

여기까지는 여느 화보 촬영장과 다름없는 풍경이다. 그런데 터키의 패션월간지 ‘알라’(사진)의 모델들은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모두가 머리에 ‘히잡’을 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알라는 개방과 전통의 교차로에 선 터키 사회를 최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제다. 지난해 6월 창간된 알라가 여성의 열렬한 지지 속에 대성공을 거두자 비난 여론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선 폐간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기존 터키의 여성 패션지는 하나같이 ‘이슬람 여성의 경건하고 검소한 생활’을 강조했다. 알라는 이런 시류를 과감히 탈피했다. “베일을 씌운 보그”라는 현지 언론의 표현처럼 서구 패션지와 다름없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기사와 화보를 실은 알라는 여성 독자의 눈길을 순식간에 사로잡았고 정기구독자는 창간 1년도 안 돼 3만 명을 넘어섰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알라의 인기가 터키에 불어온 ‘이슬람 부르주아’ 시대의 개막을 반영한다”고 평했다. 기존 이슬람 전통은 사치를 죄악으로 여겼다. 생활에 필요한 것 이상의 소비는 종교적 타락을 조장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꾸란과 벤츠는 공존할 수 있다”며 중상주의(重商主義) 정책을 펴면서 사회는 변하기 시작했다. 부를 축적하는 부르주아는 더는 죄악이 아닌 선망의 대상이 됐다. 알라의 성공도 이런 시대적 흐름에 힘입은 결과란 해석이 있다.

반면 종교계와 남성 단체는 알라를 ‘문란함의 극치’라고 비난한다. 여성의 성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서구 자본주의의 나쁜 점만 배웠다는 것이다. 율법학자 알리 브라크 씨는 “알라가 소개하는 제품들은 일반 터키인은 감당하기 어려운 초고가 상품뿐”이라며 “무분별한 사치풍조는 젊은이들의 가치관 형성에도 좋을 게 없다”고 말했다.

이에 알라 측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이브라힘 브라크 비레르 발행인은 “히잡도 썼고 미니스커트와 스키니진은 입지 않는 등 기본적 율법은 지키고 있다”며 “꾸란 어디에도 명품 하이힐을 신으면 안 된다는 구절은 없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터키#패션월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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