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두인족, 관광객 볼모로 이집트 차별에 항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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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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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치-석방’ 되풀이하는 베두인족의 안타까운 현실

“그들은 음식을 대접했으며 ‘미안하다’고 했다.”

10일 오후 이집트 시나이 반도 순례 중 베두인 무장 세력에 납치됐다 풀려난 한국 관광객들은 납치범들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지난주 초 피랍됐던 중국인 노동자 25명과 미국인 관광객 2명도 차와 음식을 대접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전통적으로 낯선 사람을 환대하는 것을 의무로 삼을 만큼 선량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베두인족이 왜 외국인을 납치하는 ‘사막의 범죄자’로 전락한 것일까.

외신에 따르면 시나이 반도에 흩어져 사는 베두인족은 대부분 극빈층으로 이집트 중앙정부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다. 최근 관광객 납치가 빈번해지고 가스 송유관 파괴, 경찰 습격 등이 잦은 것도 이 때문이다. 피랍됐던 현지 가이드 모종문 씨는 “납치했던 이들이 ‘우리는 이집트 정부와 싸우고 있다. 그래서 (납치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다”고 밝혔다.

시나이 반도는 이집트의 최고 수익 관광지로 꼽힌다. 이곳의 베두인족이 TV나 휴대전화 등 현대문명을 접하게 된 것도 이곳을 오가는 순례객과 여행객들 덕분이다. 문제는 이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차별이다. 중동전쟁 후 이스라엘이 점령했던 시나이 반도는 1979년 평화협정 때 이집트로 반환됐다. 그 뒤로 베두인족은 이집트 정부에 의해 ‘이스라엘과 협력했던 자’라는 억울한 딱지가 붙어 불신의 아이콘이 됐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철권통치 30년간 베두인족은 자신의 소유로 된 농지를 등록할 수 없었으며 정당 결성도 할 수 없었다. 시나이 반도가 최고의 관광지이자 광물자원이 풍부한 지역임에도 고용주들은 베두인족을 채용하지 않는 등 구조적으로 차별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한 후로 이집트 국내 상황이 혼란에 빠지면서 수도로 경찰 병력이 집중되자 치안이 약해진 틈을 타 베두인족은 세력을 키워 왔다. 베두인족은 관광객들을 납치했다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면 피랍자들을 풀어주는 방식으로 당국을 옥죄고 있다. 이는 관광이 국가 최대 산업이자 주요 수입원인 이집트 정부로서는 여행객의 발길이 줄어들수록 난처한 상황이 된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아랍어로 ‘바다위(Badawi)’, 즉 ‘사막에 사는 자들’이라는 어원을 가진 베두인족은 주로 아라비아 반도와 이스라엘의 네게브 지방, 이집트 시나이 반도 등 반건조 사막지대에서 생활해 왔다. 이들은 보통 흘러내릴 듯한 하얀 디슈다샤(전통 복장) 차림으로 모래를 걷는, 부유하고 선한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부족이다. ‘낙타를 몰고 오아시스를 찾아다니는 우아한 부족’이라는 별칭도 따라다닌다. 이들은 유목생활을 하면서 텐트에 항시 손님이 2, 3일 편히 묵고 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둔다. 따라서 피랍자들이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것이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닌 것.

선조 대대로 유목생활을 해 왔던 베두인족은 1950년대부터 상당수가 아시아 중서부로 이동해 정착하기 시작했다. 당시 시나이 반도에 있던 사람들은 카이로 중앙정부의 유화정책으로 땅을 경작하고 사업을 확장하면서 정착을 시작했다. 자녀들은 카이로나 알렉산드리아 등 대도시 학교로 보내져 도시인이 됐다. 이제는 낙타 대신 도요타 트럭이 물을 길어 온다. 몇몇 베두인족이 고립을 자처하며 전통 생활풍습을 고수하고 있지만 대개는 현대 문물에 젖은 지 오래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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