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타나모 군사법정, 오바마 정부 첫 테러범 재판 현장을 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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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음 유리벽으로 차단된 방청석… “기밀 삭제” 40초 늦게 스크린 중계

17일 오전 9시(현지 시간) 미국 관타나모 해군기지 특별군사법정에서 지구촌의 주목을 끄는 재판이 열렸다.

2000년 10월 미 해군함정 ‘USS콜’ 폭파 테러를 지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최고지도자 압드 알라힘 알나시리(47)에 대한 재판이다. 이날 재판은 사건 발생 12년 만에, 붙잡힌 지 10년 만에 열리는 재판인 데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처음으로 열리는 군사재판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관타나모 군사법정은 테러 혐의를 받고 있는 외국인을 미 연방법원과 군사법원 외에 별도 법정에서 재판하기 위해 2001년 11월 13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설치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공약으로 내건 뒤 이곳에서의 군사재판도 중단시켰으나 의회의 반대로 지난해 초 ‘재판 동결’을 해제했다. 미 국방부는 인권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비난을 의식해 이례적으로 언론과 시민단체에 이날 재판 과정을 공개했다.

높은 회색 벽으로 둘러싸인 군사법정 건물에는 도처에 긴장감이 돌았다. 검은 천과 함께 철조망이 주변을 감싸고 있으며 담 주변 곳곳에 ‘사진촬영금지(No Photography)’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 법정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도 까다로웠다. 카메라는 물론이고 수첩 등 일체의 휴대품 소지가 금지됐다. 두 번이나 X선 검색대를 통과한 뒤 법정 안으로 들어서자 종이 메모지와 펜이 배부됐다. 재판정 안에는 휴대전화와 카메라 노트북 캠코더 무전기 CD롬 디스켓 등 일체의 전자제품은 ‘노’라는 사인이 붙어 있었다.

동아일보 특파원에게 배정된 좌석은 군사법정과 이중 방음유리벽으로 차단된 방청석 바로 앞줄 중앙. 50개 방청석 앞줄에 취재기자 6명이 앉았고 비정부기구(NGO) 출신 인권운동 관계자와 국방부 당국자들이 뒷자리에 앉았다. 알나시리의 폭탄테러에 의해 숨진 미군(미 해군 17명 사망, 40여 명 부상) 유족들도 참석했다. 사진 촬영은 말할 것도 없고 녹음도 허용되지 않았다.

법정은 165㎡(50평) 남짓했다. 재판장 옆엔 대형 TV 스크린이 걸려 있었고 재판장석을 기준으로 왼쪽엔 변호인단이, 오른쪽엔 군 검찰단이 7명씩 앉았다. 방청석 바로 앞에는 5대의 TV가 재판 상황을 생중계했는데 실시간이 아니라 실제 상황보다 40초 늦게 중계됐다. 재판 과정에서 국가기밀이 나올 경우 미리 삭제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었다.

외부 방문객 숙소 관타나모 미국 해군기지에 설치된 외부 방문객과 훈련부대 숙소. 미 국방부는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최고지도자 재판이 인권침해 논란을 빚자 이례적으로 언론과 시민단체에 재판 과정을 공개했다. 관타나모=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외부 방문객 숙소 관타나모 미국 해군기지에 설치된 외부 방문객과 훈련부대 숙소. 미 국방부는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최고지도자 재판이 인권침해 논란을 빚자 이례적으로 언론과 시민단체에 재판 과정을 공개했다. 관타나모=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오전 10시, 알나시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USS콜’ 폭파 외에도 미군함 설리번 폭파 테러 미수(2000년), 프랑스 유조선 ‘MV랑부르호’ 폭탄 테러(2002년)를 주도한 혐의를 받아 테러, 민간인 공격, 민간시설 공격, 고의 상해, 선박 손괴, 전시법규 위반, 살인, 테러 모의 등 10여 개 항목으로 기소돼 군 검찰이 사형을 구형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변호인 측은 가혹한 고문에 따른 거짓자백이라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파란 고무장갑을 낀 미 해군 2명에게 이끌려 법정에 나온 알나시리는 10년 가까이 갇혀 있어서인지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최고지도자였다는 기풍은 느낄 수 없었다. 짧은 머리에 수염을 깎고 반소매 흰색 죄수복 차림으로 왜소한 체격이었다. 수용소 안에 있을 때 채우는 발 족쇄는 풀려 있었다. 그는 변호인단과 악수를 한 뒤 자리에 앉아 통역기 헤드폰을 썼다. 때때로 턱으로 손을 괴기도 하고 다리를 꼬고 앉기도 했다. 간간이 어깨를 뒤로 젖히는 여유도 보였다. 옆엔 9명의 해군이 정복을 입고 배석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지만 별다른 소동은 없었다.

이날 재판은 알나시리에 대한 직접심문보다 군사법정의 서신 검열, 재판정 방청 공개 같은 인권침해 논란부터 수용소 존폐까지 도마에 올랐다. 케이먼 국선변호인이 “교도소장이 서신을 검열할 수 있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군 검찰이 “서신 검열은 합법적인 통제수단”이라고 반박했다. 오후에 다시 속개된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데이비드 우주 관타나모수용소 사령관(해군소장)도 “수용소 보안과 테러범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선 검열조치가 불가피하다”며 철회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변호인단은 또 관타나모 군사법정과 메릴랜드 주 포트미드 미군기지에서만 방청할 수 있는 이번 재판을 워싱턴DC 법정에서도 방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 검찰은 “방청 기회를 확대한다고 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지 모를 일”이라고 반대했다. 케이먼 변호사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죄수 1명에게 1년 동안 들어가는 비용은 통역비와 군 주둔 비용 등을 포함해 80만 달러(약 9억6000만 원)”라며 “수용소를 유지하는 것은 예산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재판이 끝난 뒤 마크 마틴스 수석 군 검찰(해군 준장)은 기자들에게 “오늘 재판에서 봤듯이 알나시리는 공정하고 투명한 재판을 받고 있다”며 “우리는 언론자유와 공정한 재판, 국가 안보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타나모특별군사법정(쿠바)=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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