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대한민국, 세계 석학에게 듣는다]<1>美 제러미 리프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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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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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感능력 뛰어난 한국인, IT혁명 이어 에너지혁명 이끌 것”

미국의 세계적인 문명비평가인 제러미 리프킨. 메릴랜드 주 베세즈다에 있는 연구실에서 동아일보 기자를 만난 그는 제3차 산업혁명을 통한 인류의 진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동안 어두운 미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는 그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게 돼서 기쁘다고 강조했다. 베세즈다=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미국의 세계적인 문명비평가인 제러미 리프킨. 메릴랜드 주 베세즈다에 있는 연구실에서 동아일보 기자를 만난 그는 제3차 산업혁명을 통한 인류의 진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동안 어두운 미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는 그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게 돼서 기쁘다고 강조했다. 베세즈다=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뒤로하고 새로 맞은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석학 제러미 리프킨(67)은 지금 세계가 인류사에 몇 번밖에 없는 중요한 변곡점에 와 있다고 진단했다. 인류에게 ‘제3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있다는 것. 3차 산업혁명은 1, 2차 산업혁명과는 완전히 다른 경제구조와 국제관계, 고용체계, 소통방식 등을 낳게 될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지난주 메릴랜드 주 베세즈다에 있는 연구실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리프킨은 한국이 3차 산업혁명을 이끌 나라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이 갖고 있는 핵심 자산으로 정보기술(IT)의 발달, 높은 환경의식, 사회적 유대감을 꼽았다. 》
―3차 산업혁명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 같은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듯하다.

“그건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3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정보기술과 에너지 혁명이다. 이 혁명은 사회구조를 집중식에서 분산식, 폐쇄형에서 개방형으로 바꿔놓고 있다. 인류는 인터넷을 통한 거대한 진보를 경험하고 있다. 인터넷은 정보의 수평적 분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수소전지 등 재생가능 에너지 개발로 에너지 구조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던 건물들이 자체적으로 발전 시설을 갖추고 에너지를 서로 나눠 쓰는 시대가 오고 있다. 정보기술과 에너지 혁명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발전하고 있다. 에너지-커뮤니케이션 혁명은 새로운 경제체제를 만들고 있다. 새로 등장하는 경제체제는 협업과 분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서로 협력하는 개인, 기업, 나라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게임이 아닌 윈윈 전략이 미래사회의 키워드가 될 것이다.”

―경쟁에 익숙한 인간이 서로 잘 협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감(empathy)’의 능력을 가졌기에 가능하다. 우리는 인간이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의 이익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배웠다. 계몽주의 이후 이런 생각이 굳어졌고 시장 자본주의도 이런 사상 위에서 발달했다. 그러나 최근 생물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인간의 본성은 적대적 경쟁보다 유대감이라는 고차원적 욕구를 지향한다는 것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고 있다.

19세기의 1차, 20세기의 2차 산업혁명까지만 해도 인간의 공감 능력은 가족, 지역, 국가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유대감은 지구 전체로 확장, 분산되고 있다.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위대가 올린 트위터 메시지에 수만 마일 떨어진 곳의 젊은이들이 공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3차 산업혁명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가. 아니면 앞으로 일어날 것인가.

“인터넷 혁명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아시아에서 먼저 시작됐다. 에너지 혁명은 지금 시작되는 단계다. 유럽, 특히 독일에서 먼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을 3차 산업혁명을 이끌 나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인은 천성적으로 유대감이 강한 민족이다. 다른 사람의 정서적 상태에 공감함으로써 그들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에 이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한국인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가.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증거다. 나는 이 같은 한국인의 능력이 한국의 역사에서 길러졌다고 본다.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해를 끼치지 않고 평화를 추구하면서 살아왔다. 다른 사람도 유한한 생명을 갖고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대결보다는 협력을 택하며 살아온 것이다. 수평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이 한국에서 유달리 발달한 것도 한국인들의 뛰어난 공감 능력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본다.”

―최근 북한 지도체제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북한에도 ‘아랍의 봄’ 같은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변혁이 일어나려면 다른 사회의 사람에 대한 정서적 연대감부터 느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자아의식(selfhood)이 있어야 한다. 자신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만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자아의식이 심각하게 결여돼 있다. 정권의 조직적인 선전 선동과 세뇌의 결과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나’는 없고 하나의 거대한 ‘우리(We)’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 의식은 ‘위대한 지도자’에게 충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자신의 상태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한 지도체제에 조직적으로 대항하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국가에서 시위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은 주민들의 자의식이 충분히 갖춰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세계적으로 젊은이들의 불만이 강렬하게 분출됐다. 그들을 분노하게 만든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반월가 시위에 앞서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젊은이들의 대규모 시위가 있었는데 당시 현장에 있었다.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인터넷 세대라는 점이다. 젊은이들은 시위를 하는 도중에도 서로 트위터를 하며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시위대의 분노를 자본주의에 대한 반발이라고 보는데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터넷 세대는 주의나 사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은 권력의 집중을 원하지 않을 뿐이다. 시위대가 대항하는 것은 집중적, 하향식, 폐쇄적 권력 구조이지 자본주의 체제가 아니다. 시위대는 ‘평행적 권력(collateral power)’이 존재하는 사회를 원한다. 따라서 좀 더 분산적 형태의 권력 구조를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

―최근 유럽의 재정위기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큰 진전이 없다. 결국 인류의 공감 부재를 말해주는 것 아닌가.

“부재라기보다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유럽은 유럽연합(EU)이라는 공동체를 구성하고 경제협력 체제를 마련했지만 아직 정신적 유대감과 사회적 신뢰감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세계화도 마찬가지다. 제도적 세계화는 많이 진척됐지만 전체 구성원의 공감대가 부족한 엘리트 주도의 하향식 세계화였기 때문에 큰 성과를 내지 못했고 많은 반발이 따랐다. 나는 모든 사람이 글로벌화를 원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다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재글로벌화(re-globalization)가 이뤄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정부와 기업, 매우 한정된 노동단체들이 참여하는 세계화였다면 앞으로는 비정부기구(NGO)가 폭넓게 참여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 의식이 생길 수 없다.”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 첨단기술 도입으로 인류가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는 미래를 맞게 될 것으로 경고했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고실업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데 대안은 없나.

“임금 노동자를 양산하는 시대는 종말을 맞고 있다. 3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이 같은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학을 졸업하는 수많은 젊은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은 ‘시민사회(civil society)’로 눈을 돌려야 한다. NGO들이 활동하는 영역이다. 이 분야의 고용 기회는 지금까지 무시돼왔다. 고용 기회가 별로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삶의 질이 중시되고 협업 구조가 자리 잡는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시민사회가 지금보다 훨씬 많은 고용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적어도 향후 40년 동안 대규모 고용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점이다. 인터넷과 에너지 혁명에 걸맞은 분산형 인프라가 구축되려면 적어도 40년 정도의 기간이 걸린다. 그동안 인프라 구축에 많은 인력이 소요되고 고용 수요가 급속하게 팽창할 것이다. 물론 지속적인 고용 창출로 이어지기는 힘들지만 이 기간에 고용 기회가 크게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저술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강연 스케줄도 꽉 짜여 있다. 너무 바쁘게 사는 것 아닌가.

“아내가 ‘노동의 종말’을 쓴 사람답지 않게 너무 일에 파묻혀 산다고 말한 적이 있다(웃음). 사실 오늘 오전에 유럽에서 돌아왔다. 20년 전에는 좋아하는 운동도 하며 일과 여가의 균형을 맞추며 살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일주일에 60∼70시간씩 일하고 있다. 지난해 버지니아 블루리지 지역에 농장을 샀다. 곰 사슴 여우들이 여유롭게 뛰노는 곳이다. 그동안 너무 바빠서 거의 못 갔는데 이제는 조금씩 업무량을 줄이고 여유를 즐기고 싶다.”

베세즈다=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제러미 리프킨은 누구
다양한 학문 넘나들며 인류 미래 집중 연구
저서 ‘엔트로피’ ‘노동의 종말’ 세계가 주목


제러미 리프킨은 미국 콜로라도 덴버 출신으로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과와 터프츠대 플레처 국제관계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역사 철학 심리 과학기술 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인류의 미래를 예견하는 연구에 집중했다. 그는 에너지 낭비가 가져올 인류의 재앙을 경고한 저서 ‘엔트로피(Entropy·1980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어 ‘노동의 종말’(1995년)에서 첨단기술 도입으로 인간이 노동에서 소외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지적함으로써 기술과 자본의 유토피아적 미래관이 가진 위험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가리켜 “크게 생각하고 논쟁적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사회윤리적 예견가”라고 평했다.

1977년 경제동향연구재단(FOET)을 설립했고 저술과 강연활동을 펼쳐왔다. 또 육류소비 반대, 수소에너지 보급운동 등도 적극 펼쳤다. 최근 유럽위원회와 유럽의회의 자문에 응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엔트로피’ 외에도 ‘육식의 종말’(1992년) ‘바이오테크 시대’(1998년) ‘소유의 종말’(2000년) ‘수소경제’(2002년) ‘유러피언 드림’(2004년) ‘공감의 시대’(2010년) ‘제3차 산업혁명’(2011년) 등이 있다. 그의 저서는 20여 개 언어로 번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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