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김영순 씨, 美하원 ‘北인권 청문회’서 눈물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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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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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혜림 친구라는 이유로 수용소 끌려가 9년 고통”

김정일의 사실상 첫 부인인 성혜림과 절친한 친구였다는 김영순 씨가 20일 미국 워싱턴 의원회관에서 열린 북한인권 청문회에서 성혜림과 김정일의 사이를 알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요덕 수용소로 끌려가 모진 세월을 겪은 것을 증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김정일의 사실상 첫 부인인 성혜림과 절친한 친구였다는 김영순 씨가 20일 미국 워싱턴 의원회관에서 열린 북한인권 청문회에서 성혜림과 김정일의 사이를 알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요덕 수용소로 끌려가 모진 세월을 겪은 것을 증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20일 오후 3시 30분 미국 워싱턴 하원 의원회관 레이번 빌딩 2172호. 크리스 스미스 하원 외교위원회 인권소위원장이 주재한 북한인권 청문회장엔 방청객 100여 명이 빼곡히 들어찼다.

김정일의 사실상 첫 부인인 성혜림의 친구였다는 사실 때문에 1969년 함경남도 요덕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 모진 고생을 한 김영순 씨(74·여)가 증인으로 나왔다.

“성혜림과 고교와 대학을 같이 다닌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고 밝힌 김 씨는 김정일과 성 씨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는 이유로 9년 동안이나 갇혀 있어야 했다고 통곡했다. 김 씨는 “성혜림이 어느 날 ‘5호댁’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5호댁은 당시 김일성과 김정일이 거처하는 특별주택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김 씨는 성혜림의 친구였거나 김정일과 성혜림의 관계를 알거나 발설한 사람은 대부분 수용소로 끌려왔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1970년 8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312호실로 불린 보위부 안가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공포에 질려 성혜림이 자기에게 한 말과 성혜림과 관련한 내용을 아는 주변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불어야 했다. 결국 같은 해 10월 1일 자신은 물론이고 부모와 형제자매들까지도 연좌제가 적용돼 가족 7명이 요덕수용소로 끌려갔다.

“부모님과 아들, 딸은 굶어 죽었습니다. 관이 없어 거적으로 시신을 둘둘 말아 밭고랑에 버렸습니다. 1970년 7월 다른 수용소로 끌려간 남편의 생사는 아직도 모릅니다. 막내아들은 출소 후 23세 때인 1993년 남한으로 탈출하려다 붙잡혀 공개 총살당했습니다.”

김 씨는 다른 아들과 함께 2001년 2월 1일 북한을 탈출해 2003년 11월 한국에 입국했다. 6·25전쟁 당시 오빠가 북한 인민군 사단장을 지내 김일성의 총애를 받아 유복하게 살았지만 혹독한 고문을 받고 살아남은 사람은 이제 자신과 아들 하나뿐이라고 한다.

“짐승조차 얼씬거리지 않는다는 요덕수용소에 9년 동안 갇혀 내 인생을 낭비했습니다. 거기서 식구들을 잃고 피눈물 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지금도 지옥 같은 땅에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2300만 명의 우리 형제를 제발 구원해 주세요.”

김 씨는 “내 나이 70을 넘은 고령이지만 마지막 기력이 다할 때까지 고향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싸울 것”이라며 “미국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촉구했다.

이날 김 씨와 함께 증언석에 선 탈북자 김혜숙 씨(50·여)는 할아버지가 탈북했다는 이유로 정치범수용소인 평안남도 북창군 봉창리 제18호 관리소에서 28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하루 16시간에서 18시간 동안 휴일도 없이 10여 년 동안 탄광에서 일하면서 강냉이로 주린 배를 채웠다”며 “부모님이 모두 수용소에서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김 씨는 “총살한 사람들의 시신을 거적으로 말아 버려놓은 것을 수도 없이 봤다. 개도 저렇게 죽이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가까스로 탈북한 김 씨는 “중국에 머무를 때 네 차례나 인신매매를 당했다”며 “여기 저기 끌려 다니며 온갖 수치스러운 일을 다 당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잠이 오지 않는다”며 울먹였다.

탈북자들은 청문회장 안에서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비참한 인권 상황을 고발하는 그림을 전시했다. 이들이 전시한 그림에는 함경북도 무산군 보위부 구류장과 18호 관리소에서 진행된 교수형 및 공개 총살을 담은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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