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간총리 14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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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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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부재-외교무능-대지진 ‘三災’

간 나오토(菅直人·사진) 일본 총리가 취임 1년 2개월여 만에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에서도 설 땅을 잃고 국민의 외면을 받으며 사실상 불명예 퇴진한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간 총리가 내건 슬로건은 훌륭했으나 이를 뒷받침할 실력이 부족했다. 그는 취임 직후 참의원선거에서 소비세 인상론을 들고 나왔다. 소비세 인상은 만신창이가 된 재정을 바로세우기 위해 꼭 필요했지만 옛날부터 이를 주창한 정당이 모두 선거에서 참패할 정도로 민감한 주제였다. 그런데도 치밀한 준비와 정치권 협의 과정 없이 덜컥 슬로건으로 내걸었으니 참패는 예고된 것이었다.

그가 취임 첫날부터 치켜든 반(反)오자와 노선도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정치슬로건이었다. ‘구시대 정치인’ ‘금권정치’ ‘막후정치’의 상징이 된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간사장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새 시대 정치가 불가능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간 총리의 창당 동지이자 정치적 맹우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가 돌아서는 등 정치적 기반을 많이 잃었다. 그럼에도 ‘실력’으로 새 정치를 보여줬더라면 권력기반을 다질 수 있었겠지만 간 총리에겐 그만한 리더십이 없었다.

간 총리가 시종 ‘뺄셈 정치’로 일관한 것도 안타까운 점이다. 간 내각은 최대 세력인 오자와파를 배제한 전형적인 소수파 연합정권이다. 그럴수록 당 안팎을 아우르는 ‘덧셈 정치’를 하거나 적어도 우군세력만이라도 확실하게 틀어쥐었어야 하는데 어느 것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초당적 협력이 절실한 상황에서도 간 총리는 ‘자칫 자민당에 권력 일부를 내주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에 야당을 껴안지 못했고 야당은 ‘간 총리가 있는 한 협력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뺄셈 정치를 하다 보니 여야 모두에 입지가 좁아진 것이다.

외교 무능은 결정적으로 국민을 돌아서게 만들었다. 지난해 9월에 터진 중국과의 센카쿠(尖閣) 분쟁에서 간 내각은 허둥대다 국익과 국민 신뢰를 모두 잃었다. 대미 외교에서도 미일동맹의 중요성만 강조했을 뿐 믿을 만한 외교 상대란 인식을 심어주지 못해 진정한 파트너로 대접받지 못했다.

대지진과 원전사고는 간 내각에도 재앙이었다. 간 총리는 허둥대다 국민 비난을 자초하자 관료조직과 자위대, 도쿄전력을 비판하는 아마추어 같은 모습을 보였다. 무한책임을 진 국정 최고지도자가 국난 극복을 위해 수족처럼 부려야 할 핵심 국가기관을 틀어쥐지 못하고 야당처럼 ‘탓’만 하자 국민의 불안과 불만은 극에 달했다. ‘총리가 어떤 자리인지’에 대한 지도자관(觀)이 부족했던 것이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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