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내년이면 中에도 재스민 활짝 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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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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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 혁명’ 첫 발기인 5인중 1인 ‘숲의 지혜’ 인터뷰

한국서 비밀리 활동 ‘중국 재스민 혁명 발기인’ 가운데 한 명인 ID ‘숲의 지혜’ 뒷모습. 그는 자신의 신분이 노출돼 중국 당국에 보복당할 것을 우려해 기자의 옷으로 갈아입은 뒤 촬영에 응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한국서 비밀리 활동 ‘중국 재스민 혁명 발기인’ 가운데 한 명인 ID ‘숲의 지혜’ 뒷모습. 그는 자신의 신분이 노출돼 중국 당국에 보복당할 것을 우려해 기자의 옷으로 갈아입은 뒤 촬영에 응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중국이나 북한 같은 독재 국가 국민은 인권을 짓밟힌 채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독재정권은 세계에도 위협을 주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중국과 북한이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숲의 지혜(Forest Intelligence)’라는 ID로 인터넷을 통해 중국의 ‘재스민 혁명’을 이끌고 있는 중국인 A 씨(23)는 11일 동아일보 기자와 단독으로 만나 이같이 말했다. A 씨는 재스민 혁명에 민감한 중국정부를 의식해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한국의 모 대학에서 유학 중인 그는 ‘중국 재스민 혁명 초기 발기인 5명’ 중 한 명이다. 올해 2월 트위터에 ‘재스민 집회’ 선동 글을 초기부터 올린 사람도 이들이다. 철벽같던 중국 공산당을 컴퓨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긴장시키는 이들은 현재 한국 미국 프랑스 일본 등지서 유학 중인 대학생과 중국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는 신세대 엘리트 등 25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현재 ‘재스민행동’이라는 사이트(Molihuaxingdong.blogspot.com)를 개설해 ‘혁명’을 이끌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철저히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게시판에 올리는 글은 온라인에서 공동 문서작업을 할 수 있는 구글 ‘도큐먼트’를 이용해 25명이 공동으로 작성한다.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역시 핵심 멤버들의 동의를 얻은 뒤에야 이뤄질 수 있었다.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 아래에서 인민이 겪고 있는 일은 ‘콰샤즈루((고,과)下之辱·과하지욕·가랑이 사이를 지나가는 치욕)와 같습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의 억압적 통치와 불평등을 비판하면서 가지고 온 노트북 컴퓨터를 켜더니 ‘재스민행동’ 사이트에 올린 사진을 하나하나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는 그중 한 장을 가리키면서 “정부의 강제철거에 반발해 자기 집을 지키겠다고 지붕에 올라가 분신하는 여성의 모습”이라며 “이건 억압적 통치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 전체 인구의 0.4%가 75%의 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나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 정부가 설치미술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아이웨이웨이(艾未未·53) 씨를 구금하고 민주화 운동을 자극할까 염려해 대학생이 참여하는 신해(辛亥)혁명 100주년 관련 토론회를 금지하는 등 재스민 혁명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정부는 ‘재스민 혁명’이 반(反)중국적인 외세에 의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웨이웨이 씨 등 200명이 넘는 반체제 인사는 재스민 혁명을 주도하지 않았는데 공안이 불법으로 검거한 겁니다.”
▼ “北에도 하루빨리 재스민 향기 퍼지길” ▼

그 역시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까봐 극도로 경계했다. 8일 ‘재스민행동’ 홈페이지를 보고 e메일을 보내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전화보다는 스마트폰용 메신저로 대화하자고 했다.

11일 인터뷰를 위해 서울역에서 만났을 때에는 자신의 위치를 먼저 알려주지 않고 멀리서 기자가 자신과 통화하는 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본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 촬영도 ‘뒷모습만’이라는 전제를 단 뒤 자신의 옷 대신 기자의 옷을 빌려 입은 뒤에야 응했다. ‘재스민행동’ 멤버들끼리도 서로의 신상에 대해 절대 묻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고 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중국에 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중국 당국이 내 신병을 요청한다면 한국 정부가 나를 보내겠느냐”고 기자에게 묻기도 했다.

두려움 속에서도 그는 ‘재스민 혁명’의 성공을 낙관하고 있었다.

“중동·북아프리카의 민주화 혁명도 처음에는 수천 명에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이집트 나일강변에 수만 명이 모여들었습니다. 중국에서 집회를 세 차례 정도 했을 때 중국에 있는 동창에게 재스민 혁명에 대해 물어보면 몰랐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중국에도 ‘재스민 (혁명의) 향기’가 진동할 겁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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