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대통령, 비상사태 선포… “즉각 퇴진” 하루새 강경선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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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궁 주변 탱크 배치… 시민 수만명 거리시위

연내 퇴진을 약속한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66)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살레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강경책으로 선회했다. 집권당인 국민의회당은 23일(현지 시간) 단독으로 비상조치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모든 집회와 시위가 금지됐다. 야권은 “비상조치법이 적법성을 갖추지 못해 원천 무효”라며 “25일 살레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살레 대통령과 21일 시위대 지지를 선언한 알리 모흐센 알아흐마르 육군 제1기갑사단장의 대치 상황은 예멘 전역으로 번졌다. 남동부 무칼라 지역에서는 양측의 무력 충돌로 2명이 숨졌다. 수도 사나의 대통령궁과 국방부 등에는 살레 대통령의 아들 아흐메드가 이끄는 공화국 수비대 탱크가 진주했고, 사나대 인근 광장에는 알아흐마르 사단장이 이끄는 병력과 탱크가 시위대 보호를 위해 배치돼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다. 사나에는 시민 수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살레 대통령의 하야 약속에도 불구하고 예멘 상황이 악화될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는 ‘테러+내전’이다. 예멘 남부 지역은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의 본거지다. AQAP 요원들은 이 지역 부족 사회에 깊숙이 침투해 있어 색출하기가 쉽지 않다. 미국이 연간 3억 달러(약 3360억 원)를 예멘 군사 원조에 쏟아 부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8일 유혈 진압 사태가 발생하자 살레 대통령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퇴진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22일 “최근 예멘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건 알카에다의 확산”이라고 말했다. 이날 AFP통신은 “예멘 남부 아비안 주에서 교전이 벌어져 예멘 군이 알카에다 요원 13명을 사살했다”고 보도했다.

예멘은 부족 문화 전통이 강해 중앙 정부가 지방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사회다. 이 때문에 살레 대통령은 영토를 크게 네 지역으로 나눈 뒤 각 지역에 사단을 배치했다. 각 지역에서는 사단장이 사실상 최고 권력자다. 이들이 살레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한 건 그에게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30년 넘게 충성했던 알아흐마르 장군이 등을 돌린 상태다. 사우디아라비아 영자지 아랍뉴스는 “살레 대통령이 ‘후임자를 뽑아 놓지 않고 물러나면 (사단 간에) 내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게 허튼소리만은 아니다”고 전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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