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日本 대지진]“日환하게 웃는 그날, 다시 취재 와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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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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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히신문 시미즈 기자, 본보 기자와의 6박7일 동행기

평화로운 일상의 모든 것을 깨부수고 삼켜버린 거대한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 그리고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사고. 재난 상황과 이재민의 고통을 전하기 위해 서울에서 일본 동북부 지역으로 급파된 동아일보 기자 3명과 함께 12일 재해 현장으로 향했다.

“여기는 도심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쓰나미로 큰 피해를 본 이와테(巖手) 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 시로 가던 중 교통정리를 하고 있던 경찰에게 물었다. “5km 정도입니다.” 쓰러진 전봇대가 가옥을 덮치는 바람에 부서진 기둥과 가루가 된 기왓장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바다에 접한 시가지에 도착해 피난지로 변해버린 중학교의 체육관을 찾았다. 모포를 둘러쓴 채 망연자실 앉아 있던 여성(46)은 “아이들과 함께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아버지는 부서진 집 안에 갇혀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찾으러 가보셨냐’고 묻자 그는 “무서워서 도저히 집 근처로 갈 수 없다”고 했다.

박형준 기자가 내게 물었다. “왜 저분은 아버지를 찾으러 가지 않는 걸까요. 저라면 반드시 갔을 것 같은데…. 시미즈 씨는 어떻습니까.”

“도우러 가고 싶지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찾으러 가고 싶은 것은 당연해요. 하지만 저분은 절망에 빠진 나머지 내일이라는 것조차 생각할 수 없어요. ‘슬프다’고 말할 힘마저도 모두 빼앗겨 버렸을지도 모르지요.”

취재 중 난처한 일도 적지 않았다. 12일 현장에 도착했을 때 후쿠시마(福島) 시내에는 문을 연 숙박시설이 없었다. 시청의 임시 피난소에 부탁해 겨우 잠자리를 마련하고 물어물어 편의점을 찾아갔지만 선반은 텅 비어있었다.

하지만 가슴 따뜻한 일들도 있었다. 센다이(仙臺) 시내 취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슈퍼마켓이나 음식점이 하나같이 문을 닫은 와중에 문을 연 빵집을 하나 발견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빵과 케이크, 삶은 계란 등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다. 무료로 라면을 끓여주는 가게도 있었고 다 망가진 가게 한편에서 남아있는 화장지나 식음료를 무료로 나눠주는 가게도 있었다. 피난소에서는 자신이 먹기도 부족한 음식을 흔쾌히 나눠줬고 도움을 줬다.

기뻤던 것은 이런 모습을 동아일보 기자 3명이 취재해 줬다는 점이다. 황태훈 기자는 무료로 케이크를 제공하던 양과자 가게를 자세히 보도했다. 원대연 기자는 피해지의 실정을 보여주는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고, 한국으로부터 온 구조대의 활약을 보도했다. 박 기자는 피난처에서 나흘 만에 재회한 가족의 기쁨을 전했다.

이러한 보도를 통해 절망적인 상황 아래서도 필사적으로 살고자 하는 피해자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한국 독자에게 전달됐다고 생각한다.

17일 밤 우리 4명은 그때까지의 취재를 되돌아봤다. 황 기자는 센다이에서 케이크를 무료로 나눠줬던 가게를 취재했을 때의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점장인 아주머니는 ‘3년 후 다시 한번 여기를 방문해 달라. 그때는 반드시 부흥한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웃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 4명은 반드시 다시 한번 취재하러 가기로 약속했다, 그게 3년 후일지, 좀 더 먼 미래일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방문한 현장을 다시 찾아가 취재했던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다. ‘그때는 피해를 본 사람들이 희망차게 웃는 모습을 전했으면 좋겠다’고 기원하며 우리는 현장을 뒤로했다.

아사히신문 시미즈 다이스케(淸水大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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