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의 전태일’ 23년 철권통치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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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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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 혁명’에 독재자 벤 알리 대통령 사우디 망명한국 교민 40여명 출국…100여명도 유사시 탈출

생계수단을 빼앗긴 한 20대 청년의 분신 항거가 23년여 독재를 끝냈다.

지난해 12월 17일 아프리카 튀니지의 중부 소도시 시디부지드.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얻지 못해 무허가로 과일 노점상을 하던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 씨(26)가 경찰의 단속에 걸렸다. 졸지에 과일과 좌판을 모두 빼앗긴 부아지지 씨는 시청으로 갔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불가피했다며 선처를 부탁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는 청사 앞 도로에서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였다.

그의 분신은 만성적인 실업과 고물가, 독재에 시달려온 시민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이달 5일 부아지지 씨가 끝내 숨을 거두자 시위가 중부 도시들로 확산됐다. 카스라인에선 시위대 수십 명이 사망했다. 11일 급기야 수도 튀니스로 시위가 번졌다. 통행금지 조처가 내려지고 군 병력이 배치됐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8명이 사망했지만 “대통령은 물러나라”는 목소리는 더 커졌다.

당황한 진 엘아비딘 벤 알리 대통령은 시위 강경 진압에 대한 책임을 물어 내무장관을 경질하고 2014년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14일에는 내각 해산 및 6개월 내 조기 총선 실시까지 약속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날 밤 그는 가족과 함께 몰래 비행기에 올랐다. 목적지는 사우디아라비아. 23년여 동안 철권을 휘둘렀던 독재자는 그렇게 떠났다.

프랑스에서 독립한 이래 31년 동안 튀니지를 통치해 온 하비브 부르키바 종신대통령을 1987년 무혈쿠데타로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했던 벤 알리 대통령은 원래 직업 군인이었다. 국가안보장관과 총리(1987년)를 거쳐 권좌에 오른 뒤 대통령 연임을 2회로 제한하고 민주주의를 약속해 국민의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군대를 장악하고 언론을 통제하면서 정치범 수백 명을 투옥했다. 연이은 개헌을 통해 임기를 늘리며 2009년에는 5선에 성공했다.

그의 축출에는 대통령 일가의 부패상을 기록한 미국 외교관들의 전문을 공개한 위키리크스의 공도 컸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08년 6월 튀니지 주재 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2급 비밀 전문에는 “벤 알리 대통령 일가는 돈, 서비스, 토지, 자산에다가 요트까지 탐내며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적혀 있다. 2009년 7월 작성된 또 다른 전문에서는 로버트 고덱 튀니지 주재 대사를 저녁식사에 초대한 벤 알리 대통령의 사위 무함마드 사헤르 엘마테리가 집에 온갖 고대 유물과 최고급 음식, 심지어 애완용 호랑이까지 두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위키리크스가 입수해 폭로한 이들 전문은 튀니지 민주화 운동가들이 만든 ‘튀니리크스’에 게시됐으며, 당국의 검열에도 인터넷을 타고 현지 누리꾼 사이에 급속도로 퍼졌다.

15일 헌법에 따라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한 푸아드 메바자 국회의장은 TV 연설에서 “모든 튀니지인은 예외 없이 국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선서 직후 그는 무함마드 간누치 총리에게 “국가의 가장 큰 이익을 위해 통합정부가 필요하다”며 연립정부를 구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간누치 총리가 주요 야당 인사들과 만나 통합정부 구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튀니지는 헌법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45∼60일 내에 대통령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16일부터 사태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면서 정부는 폐쇄했던 영공을 재개방하고 공항 운영을 정상화했다. 경찰은 이날 시위대에게 총을 발사하는 등 사회불안을 고조시킨 혐의로 벤 알리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체포했다.

국제사회는 환영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튀니지 국민의 용기를 치하한다”며 공정한 선거를 기대했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인권과 언론의 자유, 의회가 함께하는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전 식민통치국 프랑스도 “국민의 뜻을 존중한다”고 했다. 누리꾼들은 튀니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꽃의 이름을 따 ‘재스민 혁명’이라고 칭했다. 영국으로 망명했던 튀니지이슬람당 지도자 라셰드 가누시 씨는 “조만간 귀국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날 튀니스 중앙역이 방화로 불길에 휩싸이고 시내 명품 가게들과 호화주택들이 약탈되거나 불에 탔다. 특히 벤 알리 대통령 일가 소유의 건물들과 사업체들이 방화의 목표가 되고 있다. 2006년 한 프랑스 기업인으로부터 요트를 빼앗은 것으로 알려진 벤 알리 대통령 전처의 조카 이메드 크라벨시 씨는 해외로 탈출하려다 비행장에서 분노한 군중에게 맞아 16일 숨졌다. 취재 중에 최루탄에 맞아 치료를 받아오던 프랑스계 독일인 사진기자도 이날 숨졌다. 동부의 휴양도시 무나스티르의 교도소에서는 탈옥을 노린 방화와 교도관의 총격으로 42명이 숨졌다. 영국과 독일 여행사들은 관광객 수천 명을 본국으로 수송하는 작전에 돌입했다. 또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나는 튀니지의 아들들이 매일 죽어가는 사태가 걱정스럽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튀니지 주변 국가들은 ‘시위 도미노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한편 한국 외교통상부는 “현재까지 30∼40명이 튀니지를 빠져나갔다”며 “비상상황 때 전세기를 이용해 100여 명의 남은 교민들을 탈출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튀니지 한국대사관은 시위가 절정에 이르렀던 15일 저녁 한국 교민 44명이 약탈을 피해 대사관에서 밤을 새운 뒤 16일 오전 귀가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외교부는 튀니지 전역을 여행경보 2단계(여행자제) 지역으로 지정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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