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치 ‘신사도의 실종’… 랭걸의원, 동료를 조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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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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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문책? 기분좋아!

1월 초 임기가 끝나는 제111기 미국 의회가 최근 찰스 랭걸 하원의원(80)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뉴욕 할렘에서 내리 21선에 성공한 백전노장 랭걸 의원은 재산신고 누락을 비롯해 11가지 윤리규정을 위반한 혐의로 2일 공개문책(censure)을 당했다. 1983년 하원의원 두 명이 하원 소속 사환과 성관계를 가진 이후 27년 만의 공개문책.

하지만 정작 민의의 전당으로 일컬어지는 의회를 들끓게 한 것은 랭걸 의원의 태도였다. 333 대 79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공개문책 결정을 당한 랭걸 의원은 뜻밖에 밝은 표정으로 신상발언을 신청했다. 랭걸 의원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내 마음속에서는 진심으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의회에서 동료들이 취할 수 있는 징계로는 제명(expulsion) 다음으로 강력한 징계이며 사실상 민의의 대변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일종의 ‘심리적 사형선고’에 가까운 결정에 직면한 사람이 보였다고 하기 어려운 반응.

과거 공개문책을 당한 하원의원 22명은 대부분 참회의 눈물을 흘리거나 잘못을 반성하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1921년 당시 공개문책을 당했던 텍사스 주의 토머스 블랜튼 의원(민주)은 동료 의원들의 결정이 내려진 뒤 창피한 마음에 본회의장을 뛰쳐나가다 바닥에 넘어졌다는 기록도 나온다.

하지만 랭걸 의원은 이날 오히려 당당한 목소리로 “나의 의정생활과 내가 이 국가를 위해 기여한 것은 의회에 의해 재단되는 것이 아니다”며 “내 인생은 내가 살아온 삶에 비춰 평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인보다 엄격한 윤리 잣대를 적용해 의회 스스로 자정 능력을 잃지 않겠다는 차원에서 공개문책을 결의한 동료를 되레 조롱한 셈이다.

미국 정치전문가들은 이를 ‘정치문화의 부패’이자 ‘신사도(紳士道)의 실종’이라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하원 관계자는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거나 책임을 지는 모습이 되레 자신의 정치적 장래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인식 탓에 ‘나는 파당정치의 희생양’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1983년 동시에 섹스스캔들로 공개문책을 당했던 의원 두 명 중 대니얼 크레인 의원(공화)은 ‘사과’를 했지만 게리 스터즈 의원(민주)은 “내 행동이 공개문책을 당할 사안은 아니다”란 뻔뻔한 태도를 보였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재선에 도전했던 크레인 의원은 낙선했고 스터즈 의원은 당선됐다. 랭걸 의원으로선 지난달 중간선거에서 80%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보여준 할렘의 지역구민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게 자신의 정치적 장래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주(州)마다 2명씩 선출하는 상원은 그래도 공개문책의 힘이 남아 있는 곳이다. 상원에서 공개문책을 당한 상원의원 14명 중 재선에 성공한 사람은 1902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당선된 벤저민 틸먼 의원이 유일하다. 나머지 13명은 모두 자진사퇴를 했거나 재선 도전에 실패했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지 않은 것도 기존 미국 정치문화와 다른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막강한 선거자금 동원 능력을 강력한 무기로 삼고 있는 펠로시 의장은 “위기에 빠진 민주당이 그 어느 때보다 내 지도력을 필요로 한다”며 하원 소수당 원내대표를 고집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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