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광원 33명 전원 구조]“우린 69일전의 그 칠레가 아니다, 비상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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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 시련 이겨내며 똘똘 뭉쳐… 국가홍보 효과-관광도 대박 예상
구조 드라마 이어 화해 드라마… 앙숙 칠레-볼리비아 화기애애

2010년은 칠레에 매우 특별한 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칠레는 독립 200주년을 맞는 데다 독재정권 붕괴 이후 20년 만에 중도우파가 정권을 잡은 해였다. 이 와중에 재난이 끊이지 않았다. 올 초엔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낸 대지진이 발생했고 70일간 지하갱도에 갇혀 있던 광원 33명이 극적으로 구조되는 역사적 순간도 경험했다. 광원들의 구출작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된 지금, 칠레의 국가적 역량이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지진 피해도 빠르게 극복하고 있는 데다 최근 경제도 순항을 이어가고 있어 이번 사건으로 국민의 전체적인 사기가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고 정치 안정과 외교관계 개선, 관광수입 증가, 국가 홍보효과 등 부수적인 혜택이 무궁무진하다.

○ 비상하는 칠레

칠레 국민은 산호세 광산의 기적 같은 생환 드라마가 국민을 똘똘 뭉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며 기뻐하고 있다.

현장에서 광원 가족들에게 꽃을 만들어 나눠주던 베르나르다 로르카 씨는 “칠레는 빈부 격차가 매우 심한 분열된 나라였다”며 “하지만 이곳에선 모두가 하나가 됐고 우리는 더 단결하게 됐다”고 말했다. 광산에는 가족과 구조대원, 취재진 외에도 매몰 광원과 전혀 관계없는 일반 국민도 많이 찾아 이들의 안전한 귀환을 기도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도 대국민 성명을 통해 “칠레는 이제 69일 전의 그 칠레가 아니다”며 “우리나라는 국민이 일치단결한 강한 나라가 됐으며 세계 속에서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재난 극복으로 칠레인들이 자부심을 얻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2월 발생한 칠레 대지진은 비록 500여 명의 인명을 앗아갔지만 지진의 규모에 비해 그 피해는 훨씬 작았다. 정치경제적으로 다른 개발도상국보다 발전해 국가 전체가 지진 등 대형 재난에 잘 대비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은 임기 말년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성실하고 뛰어난 리더십을 보이며 국민을 안심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4일 ‘칠레는 뭐든 잘한다’는 내용의 국가홍보용 구호를 소개하며 “이 슬로건이 구조 작업의 성공으로 더욱 각광받게 됐다”고 전했다. 피녜라 대통령 역시 이를 계기로 지지율 상승을 노리고 있어 올해 출범한 정권의 안정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 경제, 외교에도 긍정적 효과

외신들은 광원 구조라는 기적적인 성공의 밑바탕에는 경제 호황과 이에 따른 민심 안정도 있다고 분석했다. 칠레 경제는 금융위기의 후유증이 남아 있던 지난해 ―1.5%의 성장을 했지만 올해는 6%대의 고성장이 예상된다. 또 최근 주요 부존자원인 구리값이 상승하면서 경제 성적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다른 남미국가보다 통화가치가 치솟고 일자리 증가폭도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고 있다. 특히 산호세 광산과 인근 대도시인 코피아포 지역은 이번 구조를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칠레 정부는 막대한 관광수입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산호세 광산에서 펼쳐진 감동의 휴먼 드라마는 한 세기 이상 불편한 관계를 지속해온 볼리비아와의 화해 가능성도 높이고 있다. 칠레는 1879년 벌어진 볼리비아와의 전쟁에서 이겨 태평양 연안을 차지했으며 이후에도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다가 결국 1960년대에 외교관계가 단절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칠레 정부가 광원 33명 가운데 한 명인 볼리비아인 카를로스 마마니 씨를 일찍 구조하는 성의를 보이고 이 장면을 양국 대통령이 함께 지켜보면서 관계 개선의 계기가 마련됐다는 분석이 많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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