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부진이 경제위기 탓?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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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탈락 그리스-伊에외신 ‘늙은 유럽의 몰락’ 분석“다민족 佛, 내분으로 자멸”98년 때와는 정반대 해석도

한국과 그리스의 월드컵 조별예선 경기가 열리기 전, 적지 않은 한국 팬들은 축구 실력 그 자체가 아니라 축구 외적(外的)인 이유에서 한국의 승리를 조심스레 점쳤다. 경제가 망가지고 사회도 어수선한 나라 축구대표팀이 과연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리스는 한국에 2-0으로 무릎을 꿇고 조별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리스뿐 아니다. 남유럽 재정위기를 부른 또 다른 당사국으로 분류되는 전 대회 우승국 이탈리아는 이번에 2무 1패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들고 쓸쓸히 고국으로 되돌아갔다. 월드컵 성적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나라가 처한 사회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걸까. 이와 관련해 뉴스위크 최신호 등 여러 외신은 월드컵 성적과 국민성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기사를 쏟아냈다.

가장 많이 언급된 나라는 프랑스다. 1998년 우승국 프랑스는 이번 월드컵에서 1무 2패라는 형편없는 성적을 내며 조별예선에서 탈락했다. 뉴스위크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여준) 프랑스 축구팀은 프랑스라는 국가 자체와 끊임없이 비교돼 오고 있다”며 다민족으로 구성된 대표팀의 내분, 선수단의 ‘파업’ 등이 현재 프랑스 국민들의 의식과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자본이나 세계화를 불신하는 프랑스 국민들은 자국 선수들이 받는 엄청난 수입을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소개했다. 국민들 간에 평등의식이 강하다 보니 연봉이 높은 선수들에게 보내는 응원이 부족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비해 C조 1위로 16강에 오른 미국의 선전은 근면성실과 자수성가라는 미국 사회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랜던 도너번이 알제리전 후반 추가시간에 넣은 극적인 결승골에는 ‘끈기가 있으면 어떤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다’는 미국인들의 가치관이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다. 개최국 남아공 국민들도 조별예선에서 치렀던 모든 경기의 성적에 국가 재건과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그간 자신들의 노력이 투영돼 있는 것처럼 믿었다고 한다.

또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등 쟁쟁한 우승 후보들을 대파하며 4강에 오른 독일에 대해선 호전적인 국민성이 긍정적으로 반영된 결과란 분석이 많다. 북한이 조별예선에서 탈락하고 러시아는 아예 본선에 오르지도 못한 것을 두고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역시 우월하다”는 이념적인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축구 성적과 국민성 혹은 정치사회적 현실이라는 함수관계는 호사가들의 얘깃거리일 뿐 실제 설득력은 떨어진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뉴스위크도 “온갖 그럴듯한 비유에도 월드컵 성적을 해당국 상황과 직결시키기엔 무리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예를 들어 “인종 갈등이 축구팀 성적을 떨어뜨렸다”며 비난 받았던 프랑스는 1998년 오히려 그 다양성의 힘으로 우승을 이뤄낸 바 있다. 또 이번 대회에서 스페인을 꺾으며 파란을 일으킨 스위스에 대해서도 축구전문가들은 “여러 인종을 대표팀에 받아들여 팀이 탄탄해졌다”고 평가했지만, 실제 스위스 유권자들은 지난해 말 이슬람 첨탑의 건설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을 통과시키며 이민족에 대한 폐쇄성을 보였다. 스페인도 재정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4강에 진출하며 우승 후보다운 전력을 과시하고 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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