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때리고… 大法에 날세우고… 오바마 ‘기득권과 투쟁’ 확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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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층 표 결집, 재선 디딤돌 마련 포석

“월가 은행의 가당찮은 거액의 임직원 보너스를 보면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한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월가 대형은행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를 발표한 21일(현지 시간)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이같이 강하게 월가 은행을 비난했다. 국민세금을 지원받아 겨우 살아난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사상 최고인 134억 달러 이익을 내자 직원 1인당 평균 49만8000달러의 보너스를 주기로 했다. 그나마 오바마 대통령의 제동으로 당초 계획보다 크게 줄인 보너스 규모다. 분노한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금융산업의 시계를 1930년대로 거꾸로 돌려놓는 고강도 은행규제 방안을 발표한 데는 이처럼 표면적으로는 월가의 보너스잔치가 불씨였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과 월가의 투쟁 이면에는 많은 정치적인 복선도 깔려 있다.

○ 구제금융으로 살린 월가의 보너스잔치

조지 W 부시 행정부 말기인 2008년 여름 몰아닥친 금융위기는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기회였다. 월가를 살리기 위해 그는 7870억 달러라는 특단의 구제금융을 실시했다.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 덕분에 다행히 실물경기의 선행지표인 금융업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치솟는 실업 등 실물경기는 여전히 차가운 얼음장이다.

문제는 서민은 아직 경기회복의 단맛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 혈세로 기사회생한 월가에선 샴페인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보너스 잔치를 그만두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수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월가는 이익을 직원과 주주들에게 나눠주기에 바빴다. 월가를 회생시킨 오바마 대통령에게 월가가 부메랑이 돼 돌아온 셈이다.

○ 실업 고통 받는 서민 겨냥해 월가 때리기 나서

오바마 대통령이 월가를 지목해 집중적으로 때리기에 나선 시기는 공교롭게도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에 패배한 직후다. 이 선거로 민주당은 상원에서의 ‘슈퍼 60석’이 무너져 공화당과 정책 협조를 하지 않고는 단독으로 법안을 추진하기 어렵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의 개혁정책이 동력을 상실하는 위기에 빠진 것이다. 사활을 걸고 추진해온 건강보험개혁법안도 공화당과의 협상과정에서 누더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월가의 ‘살진 고양이’는 정국을 돌파할 수 있는 효과적인 카드였다.

주지사와 상원의원 두 차례 선거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제1개혁과제인 건강보험개혁법안은 오히려 표를 갉아먹는 ‘악재’였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명분에는 공감을 얻어냈지만 당장 호주머니에서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중산층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실업으로 고통받는 서민들을 겨냥해 월가를 집중 공격함으로써 흩어진 표를 모으는 계기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 투쟁전선 넓히는 오바마

오바마 대통령은 월가의 도덕 불감증을 집중 타격하면서 민주당에 불리한 판결을 내린 대법원에 대해서도 포문을 여는 등 전선을 더욱 넓히고 있다. 당초엔 건강보험개혁법안에 반대하는 보험사와 로비스트가 집중적인 타깃이었지만 현재는 월가와 대기업, 심지어 대법원으로까지 오바마 대통령의 투쟁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대기업들이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광고를 낼 수 있도록 허용한 대법원 판결은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은 은행개혁법안을 의회에서 속전속결로 처리해야 하는 부담을 동시에 안게 됐다. 상반기에 이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면 11월 중간선거가 가까워질수록 대형 은행들의 민주당 후보 낙선 운동이 노골적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2일 오하이오 주 연설에서 “나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싸우고 또 싸우겠다”며 대립구도를 기득권세력과의 투쟁에 비유했다. 당장 11월 중간선거 결과는 자신의 재선을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시험지가 될 수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처럼 자신을 궁지에 몰린 약자에 비유하면서 투쟁을 외치는 것은 고도의 정치적인 계산이 깔린 포석이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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