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온라인 숙제… 컴퓨터 없는 학생은 어떡하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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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디지털 디바이드’ 사회문제로
부자동네 페어팩스 카운티
저소득층 아이들 엄청난 고통

미국 버지니아 주 패어팩스 카운티의 글래스고 중학교에 다니는 줄리야(11)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인터넷으로 숙제를 내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거의 매일 학교에서는 온라인으로 숙제를 내준다. 줄리야가 숙제를 하려면 방과 후 학교에 남아서 해치워야 한다. 집에서는 인터넷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 컴퓨터실은 일주일에 2번 밖에 안 연다. 도서관에 컴퓨터가 있지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을 경우 시간제한을 둔다. 방과 후 숙제를 마치고 나면 집에 가는 통학버스가 끊기는 것도 고통이다.

"친구들은 숙제를 아무 문제없이 집에서 잘 해 오는데 나는 인터넷이 없어서 고생해야 해요. 참 슬퍼요." 금발 머리를 하고 유창한 영어 발음을 구사하는 줄리야는 겉으로 보기엔 미국인이다. 그는 몇 년 전 리투아니아에서 이민왔다. 줄리야는 부모에게 초고속 인터넷을 집에 깔아달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 같다. "곧 해줄게, 곧…" 하지만 돈이 문제다. 가계 살림살이가 빠듯하다는 것을 줄리야는 알고 있다.

패어팩스 카운티 폴스처치 시에 있는 우드로윌슨 도서관의 한 사서는 쥬안(15)의 선생님에게 줄 '편지'를 썼다. 숙제를 하다가 컴퓨터에 문제가 생겼으니 면제해 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쥬안이 '권리장전'에 대한 8페이지짜리 숙제를 도서관 컴퓨터로 작업하다가 모두 날려 먹었기 때문이다. 공공도서관에서는 인터넷 사용시간을 제한하고 있다. 쥬안이 숙제를 저장하기도 전에 컴퓨터가 꺼지는 바람에 숙제가 모두 날라 간 것이다.

"돌아버릴 뻔 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막막했어요." 아버지가 살바도르에서 이민 온 쥬안은 집 근처에 있는 우드로윌슨 도서관을 즐겨 찾는다. 학교 도서관에서 방과 후에 남아서 숙제를 하다가 배가 무척 고프기 때문이다. 수업을 마치면 바로 통학버스를 타고 집으로 와 저녁식사를 하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가 사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전자도매상인 '베스트바이'가 있다. 쥬안은 종종 이 곳을 들러 노트북컴퓨터를 구경하는 게 낙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에게 노트북을 사줄 여유가 없다.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가정마다 인터넷이 속속 보급되고 있지만 인터넷 접근이 어려운 사각지대의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라고 이름 짓고 부유층이 많이 몰려서는 워싱턴 근교의 패어팩스 카운티의 학교 사례를 소개했다. 미국 가정의 3분이 2는 인터넷을 깔았다. 패어팩스 카운티에서는 이 비율이 90%를 넘는다. 우드로윌슨 도서관은 매일 오후만 되면 이민 온 저소득층 가정의 학생들로 붐빈다. 이 곳에서는 학생들이 숙제를 하려고 컴퓨터 쟁탈전이 벌어진다. 미국에서 '부자동네'로 이름나 있지만 이곳 저소득층 아이들은 학교 컴퓨터실에서 숙제를 하느라 점심을 거르거나, 공공도서관으로 가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교재를 읽고 동영상을 보거나 토론방을 이용하려면 모두 인터넷을 이용해야 한다. 프리젠테이션을 하기 위한 파워포인트도 인터넷이 있어야 작업이 가능하다. 선생님들이 숙제를 내주고 학습가이드를 올리고 학생들이 질문하거나 토론방을 드나드는 것도 모두 인터넷으로 한다. 이 모든 것이 인터넷을 통한 'fcps blackboard(패어팩스 공립학교 온라인 칠판)'에서 이뤄진다. 심지어 부모들이 아이들의 학습상황을 체크하는 것도 모두 이 곳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처럼 집에서 편안하게 언제든지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학생들과 공공장소에서 어렵게 인터넷을 사용하는 학생들 간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집에서 쉽게 인터넷을 이용할 경우 이메일을 손쉽게 주고받으면서 네트워킹을 하거나 리서치를 하는데 훨씬 유리하다.

부자동네 패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교에는 10만3000대의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90%는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다. 학교에서는 저소득층 아이들이 학교에서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수업 시작 전이나 방과 후 그리고 점심시간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저소득층이 많이 다니는 학교의 경우 이 마저도 쉽지 않은 일이다.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시간제한도 엄격하다. 이민자를 비롯한 저소득층 가정의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동생을 돌보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빨리 집으로 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에게는 학교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워싱턴=최영해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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