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독일 총선에서 기민당(CDU)-기사당(CSU) 연합의 승리를 이끌어내 연임이 유력해진 앙겔라 메르켈 총리(55)는 지난 4년 집권하는 동안 ‘조용한 카리스마’로 대연정을 이끌고 금융위기를 무난히 넘긴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2005년 11월 총리 취임 때만 해도 ‘얼마나 갈까’ 하던 사람이 많았다. 정치인 특유의 쇼맨십도 없고 용모나 말솜씨도 뛰어나지 못한 그녀의 성공 비결은 안정감 있고 낙천적인 성격과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력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무엇보다 ‘10년 중환자’ 독일 경제를 살려냈다.
취임 직전 12%에 이르던 실업률은 취임 1년 만에 10.8%로 떨어졌고 지난해 7.8%를 기록했다. 취임 첫해 0.8%였던 경제성장률은 2006년 3.0% 2007년 2.5% 지난해 1.3%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그녀의 일관된 시장친화정책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메르켈 총리는 품질 좋은 ‘메이드 인 저머니(made in germany)’만이 독일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며 법인세율을 39%에서 29.8%로 낮추는 등 각종 규제를 철폐했다. 전통적으로 노조가 강한 문화에서 노조 경영 참여를 축소하고 신규 채용자를 해고할 수 있는 기간도 고용 6개월에서 2년까지 늘리는 과감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폈다.
그녀의 친시장 마인드는 동독이라는 사회주의 국가 체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메르켈 총리는 1954년 7월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지만 생후 몇 주 만에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가는 바람에 삶의 대부분을 동독에서 지낸다. 성인이 된 뒤 한 인터뷰에서 “동독이라는 궁핍하고 감시받는 환경은 내가 잃은 게 뭔지 계속 생각하게 하면서 주어진 상황에 기뻐하고 만족하는 성격을 갖게 한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절감하게 했다”고 회고했다.
그의 이 같은 성공의 주요인은 의리에 얽매이지 않는 원칙의 정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통일 후 자신을 장관에 발탁한 정치적 후견인 헬무트 콜 전 총리와 기민당을 뒤흔든 ‘정치자금 스캔들’(1999년)이 났을 때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콜의 시대는 갔다. 당은 혼자 걷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기명 칼럼을 내는 폭탄을 터뜨린다. 부패 불감증에 빠진 기민당을 구할 클린 정치인으로 부각되면서 2000년 기민당 최초 여성 당수가 되고 2005년 11월 최초 여성 총리에 올랐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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