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노벨평화상

  • 입력 2009년 8월 1일 02시 58분


달라이 라마-수치 등 상 받고 탄압 더 받아

당초 31일 열리기로 돼 있던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에 대한 판결이 11일로 연기됐다. 수치 여사는 자택에 잠입한 미국인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가택연금 해제 2주일을 앞두고 올해 5월 체포돼 재판을 받고 있다. AFP통신은 “재판을 질질 끄는 것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돌리고 내년 총선까지 수치 여사를 묶어두기 위한 술책”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20년 동안 14년을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온 수치 여사. 미얀마 군부가 절대로 그를 그대로 둘 수 없는 이유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세계의 주목을 받는 노벨평화상(1991년) 수상자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포린폴리시 인터넷판은 “노벨평화상을 받은 뒤 탄압을 더 받는 역설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통 노벨상은 과거의 성취로 결정된다.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가 수십 년 전의 업적으로 상을 받는 일도 허다하다. 하지만 냉전 종식 이후 ‘평화’의 개념이 과거의 ‘전쟁이 없는 상태’에서 환경 인권 민주주의 등으로 확산되면서 평화상은 정치적 고려에 따라 현재진행형의 사안에 수여되기도 한다. 노벨위원회는 “(평화상의 경우) 수상으로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 즉 인권 신장 등 정치적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상자 개인의 고통은 덜어주지 못하고 있다. 되레 수상 이후 일약 ‘반체제 운동의 상징’으로 부상하면서 수상자를 겨누는 정권의 칼끝은 더 날카로워졌다. 1989년 수상자 달라이 라마는 여전히 타향살이 중이다. 그는 1989년 중국이 티베트 봉기를 유혈진압하자 국제적 관심 속에 노벨상을 받았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에는 티베트 라싸(拉薩)에서 유혈진압이 재연됐다.

1992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리고베르타 멘추(과테말라)의 꿈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폭력과 가난, 소외와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인디오 노동자들과 함께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다. 2007년 대선에도 도전해 봤지만 후보가 살해되는 핏빛 선거 속에 3%의 득표율로 고배를 마셨다. 2003년 수상자인 인권운동가 시린 에바디(이란)는 지난해 4월 “나와 가족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그가 이끄는 인권단체 사무실이 폐쇄됐고 올해 들어서는 친정부 시위대가 그의 집을 수차례 공격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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