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워싱턴 지하철 추돌 사고… 최소 9명 사망-76명 부상

  • 입력 2009년 6월 24일 02시 59분


“잠시 정차” 방송후 쾅… 아수라장
퇴근길 도심행이라 승객 적어 그나마 다행
市長 “33년 지하철 운행 사상 최악 사고”

22일 오후 5시(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메트로 레드라인(112호 열차)에 몸을 실은 승객들은 “선행열차가 멈춰 선 관계로 잠시 서겠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을 들었다. 출퇴근 시간에 열차가 서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라 누구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열차는 금세 덜컹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정상 운행 속도인 58마일(약 93km)에 가까워졌다. 몇 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나면서 승객들의 몸이 일제히 한쪽으로 쏠렸다.

이어 귀를 찢을 듯한 굉음에 이어 112호 열차의 1호 객차는 214호 열차의 후미에 거짓말처럼 올라탔다. 객차 바닥은 종이처럼 찢겨 나갔고 열차 앞부분은 뚜껑이 달아난 장난감처럼 허공을 향해 열려 있었다. 객석은 차량에서 이탈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흩어져 버렸고 객차 안은 다친 승객들이 흘린 피와 옷, 소지품이 뒤섞여 아수라장이 됐다. 그리고 곧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앰뷸런스와 경찰차가 들이닥쳤고 놀란 워싱턴 주민들은 사고현장에 몰려들어 참혹한 현장을 목격했다.

이날 사고는 워싱턴과 메릴랜드 주를 연결하는 레드라인인 타코마 역과 포트토튼 역 사이 지상구간에서 발생했다. 메트로 관계자는 “포트토튼역에 진입하기 위해 선로에 정차해 있던 열차(214호)를 뒤따르던 열차(112호)가 추돌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 사고로 112호 열차 기관사 지니스 맥밀런 씨(42·여) 등 9명이 숨지고 76명이 다쳤다. 소방당국은 부상자 중 일부를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며 이 중 6명은 중상이어서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구간 현장 관계자들은 각 열차에 최대 1200명이 탑승할 수 있지만 퇴근시간대에 탑승 승객이 적은 도심방향 열차에서 사고가 나 그나마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번 사고로 6량의 객차가 연결된 차량이 탈선했으며 부서진 객차에 갇힌 승객을 구출하기 위해 워싱턴과 메릴랜드, 버지니아 주 소방대원 200여 명이 동원돼 밤늦게까지 구조작업을 벌였다. 사고 원인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워싱턴 메트로는 출퇴근 시간의 경우 자동운행모드로 달리며 중앙통제소에서 열차를 제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통제시스템에 이상이 발생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열차가 자동운행모드로 달리더라도 긴급 상황에서는 기관사가 즉각 수동운행으로 전환해 브레이크를 이용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기관사 맥밀런 씨는 2007년부터 열차를 운행하기 시작한 비교적 신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고로 워싱턴과 메릴랜드를 잇는 구간의 전철 운행이 중단돼 퇴근길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고 23일에도 사고 구간의 열차운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메트로 측은 23일 오전 출근길에 무료 셔틀버스를 운영할 예정이다.

에이드리언 펜티 워싱턴 시장은 “이번 사고가 워싱턴 지하철 33년 사상 최악의 사고”라고 말했다. 1982년에는 오렌지라인 페더럴트라이앵글 역에서 발생한 사고로 3명의 승객이 숨졌고 1996년에는 레드라인 세이디그로브 역에서 열차가 탈선해 기관사가 숨졌다. 2004년에는 정차해 있던 열차의 제동장치가 풀리며 선로에서 밀려나 20명이 다치고 터널에 갇힌 승객 60명이 구조된 적이 있다. 한편 주미 한국대사관은 현재까지 지하철 사고로 인한 사망자와 중상자 가운데 한국인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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