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주한美2사단장 “함께 갑시다 정신… 韓美 되돌아볼 때”

  • 입력 2009년 5월 9일 02시 57분


‘2002년 여중생 사망’ 회고록

2002년 6월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미선, 효순 양 사건’ 당시 주한미군 제2사단장을 지냈던 러셀 아너레이 예비역 중장(사진)을 7일 전화 인터뷰했다. 2005년 여름 멕시코 만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난 당시 합동 태스크포스 사령관을 지내며 겪은 경험 등을 담은 ‘생존(Survival)’이란 책에서 술회한 한국에서의 경험을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서다. 아너레이 씨가 제시한 한미관계 강화의 해법은 간단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에 기반을 둔 동반자 관계 구축이고 지금이야말로 ‘함께 갑시다(Let's go together)’라는 정신을 되돌아 볼 때”라고 강조했다.

“미국, 한국을 더 배워야 반미감정 해결”

2002년 한국정치 격변기 미군의 대응도 미숙
상처받고 떠나왔지만 여전히 한국을 사랑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37년 야전군인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친절했다. 2002년 6월 ‘미선, 효순 양 사건’ 당시 주한미군 제2사단장이었던 러셀 아너레이 씨는 지난해 2월 중장으로 전역했다. 군대를 떠난 뒤 애틀랜타 한미우호협회에서 활동하며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는 아너레이 씨는 전화를 받자마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한국말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2002년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뒤 상처받은 마음으로 한국을 떠났지만 여전히 한국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의 집에 있는 TV 2대는 모두 한국산이다. 벽에는 지금도 연락하고 있는 한국 친구가 보낸 한국 달력이 걸려 있다.

―책을 집필한 동기는….

“2002년 여름 한국은 격동기였다. 월드컵을 개최했고 국내적으로는 정권 교체기였다. 한국 국민은 때로 감정적으로 격했던 순간이 있었던 것 같고 정치인들은 그런 상황을 나름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활용했던 것 같다. 미군의 대응도 미숙했다. 당시 내 보스(대니얼 자니니 미8군 사령관)는 기자회견을 젊은 공보장교에게 맡겼고 결과적으로 실수였다. 고위 관계자가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과를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그 같은 교훈을 책에 담고 싶었다.”

―직접 나서서 사과했다면 사태 악화를 막을 수 있었다고 보나.

“처음부터 직접 나서서 사과했다면 희생을 당한 유가족은 물론 한국 국민에게 가진 존중의 뜻을 좀 더 잘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후회가 든다.”

―당시 한국에서는 미국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이 사건은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됐다. 6·25전쟁을 경험한 구세대 정치인들이 신세대 정치인에게 자리를 내주던 당시 한국은 정치적 격변기였다. 리언 러포트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 등이 공식 사과했지만 ‘정치적인 요구’는 미국 대통령을 겨냥했다. 미국이 한국을 동등한 파트너로 대접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대중에게서 노여움을 느꼈다. ‘퍼펙트 스톰’이었다.”

―반미감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가 간 관계에서 늘 긴장은 있는 법이다. 북한에 대한 대처와 관련해 늘 그랬고 쇠고기 수입 등 통상 현안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정책에 국민이 반대할 권리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때로 한미 간의 관계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반미감정이라는 어려운 문제가 부각되는 것을 느낀다. 젊은층과 장년층 사이에 분명한 인식차도 있다. 2000년 사단장으로 와서 본 한국에서는 1971년에 내가 처음 주한미군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따스함’이 없었다.”

―반미감정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민간교류를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 사람들이 한국어를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미국에 가진 관심에 비해 미국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게 사실이다. 미국의 젊은 대학생들이 더 많이 한국에 가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 젊은 세대들 간에 교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2002년 시위가 격화되면서 신변에 위협을 느꼈나.

“시위대가 나를 살인자라고 했지만 신변에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다. 시위가 격화되더라도 한국의 사법당국과 경찰력이 내게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막아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한국 정부 당국이 좀 적극적으로 시위를 막지 않는다는 느낌은 들더라.”

―북한의 위협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북한의 위협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시절 주한미군을 한강 이남으로 이전 배치하기로 결정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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