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콜럼바인고교 총기참사 10년 생존자들은 지금…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4월 21일 02시 57분



《1999년 4월 20일 오전 11시 미국 콜로라도 주 리틀턴의 콜럼바인고교. 오전 수업이 한창이던 평화로운 교정은 총소리가 울려 퍼지며 비명과 절규의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범인들은 이 학교에 다니던 에릭 해리스(당시 18세)와 딜런 클레볼드(당시 17세). 인종차별주의를 표방하는 서클 회원인 이들은 ‘왕따’를 당한 데 앙심을 품고 한 시간에 걸쳐 친구 12명과 스승 1명을
살해한 뒤 자살했다. AP통신은 사건 발생 10주년인 20일 패트릭 아일랜드 씨(27)를 포함해 생존자들의 ‘그 10년 후’를 조명했다.》

악몽 딛고 재활훈련… “난 희생자 아닌 승리자”

당시 17세였던 아일랜드 씨는 2층 도서실에서 변을 당했다. 복도에서 총탄이 튀는 쇳소리, 폭발음과 함께 들이닥친 범인들은 친구들을 총으로 위협하며 미친 사람처럼 웃어대다 난사를 시작했다. 아일랜드 씨는 급히 책상 아래로 숨긴 했지만 머리에 두 발, 다리에 한 발을 맞았다. 이곳에서만 학생 10명이 희생됐다.
그는 정신이 들 때마다 깨진 유리창 쪽으로 몸을 끌고 갔다. 온몸을 버둥거리며 널브러진 책상과 피가 흥건한 친구들의 시체 사이를 지났다. 범인들의 자살로 상황은 끝난 뒤였다. 아일랜드 씨는 “(너무 힘들어) 그냥 무슨 일이 닥치든 포기하는 편이 더 쉽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과 친구들 얼굴이 떠올라 포기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겨우 창가에 다다른 뒤 건물 아래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미국 특수기동대(SWAT) 대원들을 향해 쓰러지듯 몸을 날렸다. 이 장면이 당시 TV를 통해 생중계된 뒤 그는 ‘창가의 소년(The boy in the window)’으로 불리게 됐다.
그는 두 다리가 마비됐고 머리 부상으로 기억력 읽기 쓰기 같은 인지능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다른 생존자들과 마찬가지로 밤마다 총격과 피가 낭자한 장면이 떠오르는 악몽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재활치료를 받았다. 휠체어를 타고 학교를 다니며 어린 시절 배웠던 읽고 말하기를 연습했다.
결국 그는 두 다리로 다시 일어섰다. 고교 졸업식에선 학생 대표로 고별사를 읽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다. 콜로라도주립대에 진학한 그는 결혼해서 가정도 꾸렸으며 지금은 금융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일랜드 씨는 “나는 희생자(victim)가 아닌 승리자(victor)가 되는 것을 택했다”며 “그 사건은 이제 ‘희망과 용기’라는 단어로 내 기억에 남게 됐다”고 말했다.
AP는 현재 아일랜드 씨를 비롯한 생존자들이 성장해 교육자, 공무원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는 회고록을 냈고 세계 각국을 돌며 폭력의 희생자를 돕는 활동에 나서고 있다.
션 그레이브 씨(25)는 후유증으로 다리를 전다. 통증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늘 긍정적 태도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과학수사를 전공으로 삼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당시 사건으로 이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앤 메리 호크헐터 씨(27·여)도 중태에 빠졌다 살아남았다. 인질로 붙잡혔던 남동생은 무사히 살아남았다. 그러나 정신질환 증세가 있었던 어머니가 남매의 피해로 충격을 받아 사건 발생 6개월 만에 자살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호크헐터 씨는 현재 슈퍼마켓 매니저로 일하며 10년 전의 아픔을 극복하고 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