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표 외교용어 ‘청산’

  • 입력 2009년 4월 3일 03시 02분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출범 후 전임 조지 W 부시 정부와 차별되는 외교안보 정책이 구체화하면서 ‘부시표(標)’ 외교안보 용어도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우선 강경외교의 상징이었던 ‘악의 축(axis of evil)’ 표현이 사실상 폐기됐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1일 유로뉴스 인터뷰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을 친구로 보나, 적으로 보나. 악의 축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것(악의 축)은 그들(부시 행정부)이 사용한 용어이지 우리의 용어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현실적으로도 부시 전 대통령이 2002년 초 ‘악의 축’으로 규정한 세 나라(이라크 이란 북한) 가운데 북한만 대화의 사각지대에 남아 있을 뿐이다. 미국은 지난달 31일 이란과 공식대화를 가졌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표현도 사실상 사라졌다. 클린턴 장관은 지난달 30일엔 “구체적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을 본 적은 없지만 새 정부는 ‘테러와의 (국제적인) 전쟁’이라는 용어를 이제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표현은 19세기 말 무정부주의자들의 정부 요인 암살에 맞서 유럽과 러시아가 사용한 데서 유래했으며, 부시 전 대통령은 9·11테러 직후 TV 연설을 통해 “알카에다를 상대로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됐다”고 선언했다.

관타나모 수용소 등에 구금한 테러 용의자들을 지칭해 온 ‘적 전투원’이란 용어도 폐기됐다. 미 법무부는 지난달 법원에 “‘적 전투원’이란 용어를 더는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며 구금자들은 국제법의 적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알카에다, 탈레반 또는 관련세력의 구성원 또는 실질적인 지원을 한 자들’이란 표현을 썼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1년 9월 13일 ‘테러와의 전쟁에서 비(非)민간인의 구금 처리 재판에 관한 군사명령’을 내리면서 적 전투원이란 표현을 썼다. 그 속엔 전쟁포로 대우에 관한 제네바협약의 적용을 받을 자격이 없는 불법적인 전투원이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한편 재닛 나폴리타노 국토안보부 장관은 최근 의회청문회에서 ‘테러리즘’이란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인간이 일으킨 재앙(man-caused disasters)’이란 표현을 되풀이해 보수세력의 반발을 샀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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