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피로 그린 ‘소말리아 지옥圖’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2월 24일 02시 58분



■ NYT지부장 ‘버려진 나라’ 참상 기고

계속되는 내전 ‘만인의 만인에 대한 살육’… 美 개입도 번번이 실패

군벌 싸움에 가뭄 겹쳐 수십만명 餓死 위기


‘(이보다) 더 위험한 곳은 없다. (이보다) 더한 지옥도 없다.’

미국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최신호(3·4월호)에서 해적들의 무자비한 선박 납치로 최근 외신의 단골 메뉴가 되고 있는 동아프리카의 ‘버려진 나라’ 소말리아의 참상을 소개했다.

제프리 게틀먼 뉴욕타임스 동아프리카 지부장은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르포를 통해 “(그동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소름끼치는 현장도 많이 다녔지만 이곳만큼 두렵지는 않았다”며 “국가가 아니라 무법천지이자 무정부 공간 그 자체”라고 전했다.

그는 매번 무장경호원 10여 명과 함께 최근 2년 반 동안 10여 차례 소말리아를 방문 취재해 왔다. 그의 글을 소개한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는 아직도 여객기가 운항되고 있다. 하지만 활주로에 내리는 순간, 활주로 옆에서 2007년 격추된 러시아 화물기의 잔해를 볼 수 있다.

한때 인도양의 보석이라 불렸던 모가디슈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다. 사방이 불에 그슬리고 총알구멍이 숭숭 난 건물들. 시도 때도 없는 자살폭탄 테러와 총격전, 처형이 횡행하고 가끔 미국의 순항미사일까지 날아와 터진다.

무하마드 바레 독재정부가 전복된 1991년 이후 18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내전 때문이다. 모가디슈뿐 아니라 63만7657km²(남한의 6배 반)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 전체가 ‘피바다’이자 ‘전쟁터’로 변했다.

언제 어디서 납치될지, 머리에 총알이 박힐지 알 수 없다. 죽음은 불시에 찾아온다. 아내와 통화 도중 빗나간 박격포탄에 아내를 잃은 사건은 이곳에선 더는 ‘뉴스’가 아니다.

2004년 성립된 과도정부의 통치력은 현재 모가디슈의 일부 지역밖에 미치지 못한다. 나머지 지역에는 군벌, 해적, 이슬람 과격 테러분자, 프리랜서 총잡이들이 득실댄다. 매년 2만 척의 배가 지나가는 아덴 만도 해적 소굴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지난해에만 40여 척이 나포됐다.

이런 소말리아를 두고 세계는 ‘팔짱을 끼고’ 있을 뿐이다. 지난해 5월 쓰러져가는 오두막에서 뼈만 앙상한 소년이 굶어죽고 있는 엄마 옆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본 적이 있다. 지금 세계가 바로 그때 나처럼 소말리아를 방치하고 있다.

정부 전복 이후 소말리아 군벌들은 전면적인 내전을 시작했다. 미국도 여러 번 개입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미국 특전대원의 작전 실패는 ‘블랙 호크 다운’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후 어느 정부도 ‘감히’ 소말리아에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소말리아는 씨족 간의 반목에 뿌리를 둔 이슬람 강온파 세력과 군벌, 과도정부 등이 서로 교전하고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살육’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엔 극심한 가뭄까지 덮쳐 수십만 명이 굶어 죽은 1990년대의 ‘저주’가 엄습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개입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소말리아의 현재 진짜 지도자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헌진 기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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