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순방 마친 클린턴 국무… 韓-中-美의 시각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2월 23일 02시 54분


발로 뛰고 귀는 열고… ‘클린턴식 외교’ 성공적 첫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과 중국, 일본 3국과 인도네시아 등 4개국 순방을 마치고 22일 귀국길에 올랐다. 국무장관으로서 첫 해외순방이었다. 클린턴 장관은 순방 기간에 대중 속으로 뛰어들어 그들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로 달라진 미국의 ‘얼굴’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한국, 일본 정부와는 동맹의 강화를, 중국과는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약속함으로써 태평양시대 미국 외교의 입지를 다졌다.》

한국 손 들어주다

北 ‘벼랑끝 전술’ 차단

정책공조 강화 계기

21시간 남짓의 짧은 체류였지만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방한은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관계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회였다는 게 한국 정부 관계자 및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국 정부의 한 당국자는 22일 “이번 클린턴 장관의 방한과 한미 외교장관 회담은 양국 간 정책 조율과 공조를 강화하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잇단 대남 위협 공세와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 움직임으로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구사하는 데 대한 클린턴 장관의 경고는 이런 평가를 뒷받침한다.

클린턴 장관은 “북한이 한국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비난하는 한 미국과 다른 형태의 관계를 얻을 수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인데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에서 한국의 손을 확실히 들어준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에서 스티븐 보즈워스 대사를 북한 특사로 발표함으로써 북한에 6자회담에 복귀해 대화를 하자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아프가니스탄 파병 등 껄끄러운 문제들은 일단 비켜가기도 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우리 정부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한국 쪽에 보조를 잘 맞춘 언급”이라며 “북한이 벼랑 끝 전술로 북-미 양자대화를 이끌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외교안보팀은 이번 클린턴 장관의 아시아 순방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책방향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국이 얼마나 긴밀한 한미 공조를 유지하고 동맹관계를 발전시키느냐는 것이다.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김흥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22일 보고서에서 “한국 외교는 미국과 중국, 일본의 협력구도 속에서 ‘소외’될 위험성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전문가인 제프리 베이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 보좌관, 일본을 중시하는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내정자 등 미국 외교안보 정책결정 라인이 미중일 3각 협력을 중시하는 인물이라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한국 정부도 한미일, 한중일 등 다양한 네트워크 외교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우리는 동반자다

求同存異 전략으로

새 협력시대 열었다


“세계 경제위기에 대한 공동 대처 필요성이 중국과 미국 간 상호 믿음과 합작의 기회를 제공했다.”

중국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20일부터 사흘간 중국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과 21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취임 후 처음 중국을 방문한 클린턴 장관과 중국 지도자들은 이 같은 구동존이(求同存異·같은 것은 추구하고 의견이 다른 것은 남겨둔다)의 전략으로 만나 ‘새로운 적극적 협력관계’를 구축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은 평가했다.

클린턴 장관도 20일 중국에 도착하기 직전 기자들에게 “인권과 티베트 대만 문제 등도 계속 제기하겠지만 글로벌 경제위기와 지구 온난화 그리고 안보위기 등 현안에 관한 양측 간 대화가 방해받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원 총리는 클린턴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클린턴 장관이 미중 관계에 대해 동주공제(同舟共濟·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를 거론하며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자 “손자병법의 그 구절 뒤에는 휴수공진(携手共進·서로 손을 맞잡고 앞으로 나간다)이 있다”고 화답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금융위기와 전 세계적인 문제가 커지는 상황에서 양국 관계를 심화 발전시킬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며 “경제와 무역, 대테러, 문화, 위생, 에너지, 환경 등 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클린턴 장관은 21일 양제츠(楊潔지)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과의 관계가 더 심화되고 확대되길 희망한다”며 “특히 경제 위기와 기후변화 문제를 비롯한 각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협력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국은 외교장관 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후 주석이 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에서 별도의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 또 양국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진행된 부총리급의 전략경제대화를 계속하기로 했다.

클린턴 장관은 21일 오후 미국 GE가 베이징에 세운 환경친화적인 발전소를 견학해 지구온난화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22일 오전 교회예배와 여성계 인사들과 면담한 뒤 3일간의 방중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미국 얼굴 바꾸다

개인 역량 100% 발휘

국무직 새롭게 정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힐러리 클린턴이 지금까지 봐왔던 전형적인 미국 국무장관의 모습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국무부 한 관계자는 21일 “클린턴 장관은 이번 아시아 4개국 순방에서 정책보다는 사람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손상된 미국의 이미지 개선이 이번 순방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도 22일자 기사에서 “이번 순방에서 클린턴 장관은 국무장관직을 새롭게 정의했다”며 “지역안보와 핵 비확산 등 중압감 있는 주제를 경쾌한 몸짓과 가벼운 유머로 요리해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도 “이화여대에서 여대생들과 가진 대화, 인도네시아에서의 토크쇼 출연 등을 통해 원고에 얽매이지 않는 살아있는 외교관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썼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국무장관 자격으로 아시아 지역을 순방했지만 영부인과 뉴욕 주 상원의원, 그리고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쌓아온 개인의 영향력과 성가가 100% 묻어났다는 평가도 많다.

특히 순방지마다 청중을 몰고 다닌 클린턴 장관은 마치 선거운동을 하듯 외교적 의전에 얽매이지 않고 대중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클린턴 장관은 “사람들이 다시 미국을 신뢰하고 존중하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도전인지 잘 알고 있다”며 “이 일은 정부와 정부 사이의 노력만으로 될 수 없고 사람들의 마음이 통해야 하는 것이고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외교의 본령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런 때문인지 클린턴 장관의 화려한 ‘아시아 외출’은 지난주 내내 미국 언론을 사로잡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외유인 19일 캐나다 방문,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의 첫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방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바티칸 방문도 클린턴 장관에 가려 빛을 잃었다.

껄끄러운 주제인 ‘북한의 후계 및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언급’도 클린턴 장관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발언을 클린턴 장관이 거침없이 말한 것을 놓고 미국 외교가에서는 정치인 출신인 그가 조율되지 않은 입장을 여과 없이 발언하면서 휩싸이게 될 설화의 전조라는 우려도 나온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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