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택]오바마 외교, 기대와 환상

  • 입력 2008년 11월 10일 03시 03분


미국 대선이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의 승리로 끝나자 일부 야당은 물론 국내 좌파와 이른바 진보진영은 자신들의 일처럼 반기는 분위기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대한 평소의 반감에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북-미 직접 대화를 강조한 점 등이 겹쳤기 때문일 것이다. 금방 오바마-김정일 회담이라도 열려 북핵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성급한 기대와 환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일각에선 벌써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인 ‘비핵 개방 3000’에 변화가 불가피해졌으며, 경우에 따라선 햇볕정책이 부활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7일 외신기자클럽 회견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변화와 함께 대북 외교라인 대폭 교체까지 촉구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무조건 맞추라는 식이다. 북핵 문제를 아예 미국한테 맡기라고 하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30년간의 한미관계를 보면 한국의 보수 정권이 미국 민주당 행정부와, 좌파진보 정권이 공화당 행정부와 만났을 때 한미 관계가 흔들린 경우가 많았던 건 사실이다. 이명박-오바마 행정부의 관계가 한국이 북-미 협상에서 배제된 김영삼-빌 클린턴 행정부 때처럼 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장관을 지낸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부시 때보다 중국과 더 협력적인 관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놓고 갈등을 빚게 되면 한국이 배제된 ‘미-중-북’ ‘미-중-일’ 협력 구도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바마가 북한과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겠다는 자세로 이른바 공세적 외교를 할 가능성은 크다. 그러나 오바마는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즉각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실속만 챙길 속셈이라면 오바마 행정부와의 직접 대화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실망이 커질 수 있다.

부시 행정부는 2006년 북의 핵실험을 계기로 6자회담과 북-미 직접대화를 병행해왔다. 이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도 큰 틀에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북핵 문제의 완전한 타결은 한국의 협력과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미국이 한국을 배제하고 북한과 핵 문제를 타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더구나 하버드 로스쿨 출신으로 10년 이상 로스쿨에서 강의도 한 오바마는 모든 당사자의 얘기를 듣기 전에는 결심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한다. 그만큼 컨센서스를 중요하게 여기는 신중한 스타일이라는 얘기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많은 국내외 문제를 떠안고 출발하게 될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완성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북한이 제2의 핵실험 같은 돌출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내년 하반기에나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할 일은 철저한 준비와 대화로 한미 공조를 강화하는 것이다. 오바마의 등장을 대북정책 재점검의 기회로 활용하면 된다. 실용을 강조하는 정부답게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필요하면 대북정책을 손질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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