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北-美관계 선순환 구조 만들어야”

  • 입력 2008년 11월 6일 02시 58분


[특별기고]신기욱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장

“한미공조 밑바탕 대북문제 주도적 역할 필요

과거정부 정책중 좋은 부분 과감히 수용해야”

예상대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제4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미국으로선 역사적 의미가 큰 대선이었지만 한국으로선 새 행정부와 한미 간 현안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해야 하는 현실적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보면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아시아정책을 담당했던 인사들이 새 행정부의 주요 포스트에 포진할 것이고 부시 행정부의 후기 대북정책이 클린턴 행정부와 큰 차이가 없었음을 고려할 때 정책적 연속성을 예측해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오바마 캠프의 아시아정책팀 좌장으로서 새 행정부에서 중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제프리 베이더 전 대사는 대선 직전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정책세미나에서도 대북정책에 관한 한 ABB(Anything But Bush·부시 정책 배제)는 없을 것임을 단호히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구체적 정책방향과 추진과정에서는 차이가 있을 것이며 한국 정부는 이런 점에 유의해 한미 간 긴밀한 정책적 공감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첫째,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부시 행정부 후반기와 비교해 볼 때 양자협상을 강조하면서도 좀 더 강경해질 수 있다. 부시 후기의 대북정책은 워싱턴의 보수파뿐 아니라 민주당 쪽 인사들도 비판적이었는데, 북한에 끌려 다니면서 제대로 협상을 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범죄국가’와도 필요하면 협상을 해야 하지만 그 대신 채찍과 당근을 분명히 하면서 협상을 주도해야 한다는 논리는 민주당 외교안보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의 지론인 ‘강압적 외교’의 핵심으로 새 행정부의 대북정책 가이드라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클린턴 시절의 대북조정관 제도를 활용하려 할 것이다. 외교안보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대북문제를 전담하는 것은 효율성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적 견해가 민주당 쪽에 많다. 성 김 대북특사 등을 실무적으로 활용하면서 대통령의 신뢰가 있고 정치적 무게가 있는 사람을 조정관으로 임명해 대북문제를 총괄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 새 행정부는 6자회담의 전체적 틀을 유지하면서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대북 협상안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던 일본은 물론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는 한국도 다독거려야 한다. 전통적 삼각 동맹관계를 중시하면서도 중국이 주도적 역할을 해온 다자 틀과 조화를 이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산적한 현안(금융위기, 이라크 등) 때문에 대북문제가 새 행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 오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는 구체적 협상이 진행되기 이전에 대통령이 신임하는 인사를 대북특사로 파견해 북측에 적절한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다.

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본격화되려면 내년 여름이나 가을은 돼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그때까지 새 행정부와의 정책 공조를 공고히 하고 대북관계도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우호적 남북관계는 북-미관계 진전뿐 아니라 동북아 문제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만일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는 상태에서 북-미관계가 클린턴 후반기처럼 급진전될 경우 한국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자칫 김영삼-클린턴 시절처럼 북-미관계의 진전 속에 소외되면서 한미관계가 냉각되는 상황이 초래되지 않도록 주도면밀한 노력을 해야 한다.

결국 한미, 남북, 북-미관계 간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은 한국 정부가 안고 있는 어려운 숙제이다. 민주당 행정부가 들어서는 이 시점에 대북 포용정책이 추진되면서도 한미공조가 비교적 잘 이루어졌고 이를 기반으로 북-미관계도 많은 진전이 있었던 클린턴-김대중 시절의 경험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에 새 행정부가 들어서는 이때를 외교안보 정책 점검의 호기로 삼아야 한다. 수용적 외교를 벗어나 능동적 한미공조 외교에 나서는 동시에 과거에 대한 비판을 넘어 전임 정책이라도 좋은 부분은 과감히 수용하는 ‘실용외교’의 진수를 보여주는 결단과 리더십이 필요하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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