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 위기 ‘슬픈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를 가다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10월 25일 03시 01분



썰렁한 도심24일 금융위기에 처한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시내의 모습. 아이슬란드의 심각해진 경제 상황을 반영하듯 하늘도 잔뜩 찌푸려 있다. 레이캬비크=송평인  특파원
썰렁한 도심
24일 금융위기에 처한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시내의 모습. 아이슬란드의 심각해진 경제 상황을 반영하듯 하늘도 잔뜩 찌푸려 있다. 레이캬비크=송평인 특파원
“어업-관광이 그나마 버팀목”

24일 눈발이 휘날리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항. 파도가 세차 고기잡이에 나서지 못한 배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금융산업 거품으로 ‘한동안’ 잘나가기 전까지는 어업이 주 산업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카루스처럼 추락한 아이슬란드의 일부 국민은 이제 “다시 어업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말한다.

바닷가에서 만난 비르키르 구드나손(38) 씨는 “어릴 적 할아버지를 따라 고래잡이를 나가곤 했다”며 “어업이 상처 입은 아이슬란드인의 마음을 달래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에서 이미 많은 사람이 해고됐다. 실업자 중 상당수가 어업이나 수산물가공업에서 일자리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선박중개업을 하고 있는 비외른 군나르손 씨는 “어부들은 생선을 대부분 유럽국가로 수출하면서 유로화를 받기 때문에 이를 크로나화로 환전하면 어부들의 생활은 전보다 나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슬란드 국민들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요즘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번지고 있는 ‘반영’(反英) 감정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영국 정부가 아이슬란드 은행에 들어 있는 자국민의 예금을 보호하기 위해 ‘반테러법’을 발동하면서 아이슬란드인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한편 크로나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올해 관광시즌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고래 관광을 주선하는 토라 구드문트토티르(27) 씨는 “보통 고래관광은 4월에 시작해 10월 말로 끝난다”며 “그런데 올해는 관광객들이 뒤늦게 많이 몰려와 날씨만 허락한다면 몇 차례 배를 더 띄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요즘 시내의 레스토랑은 대체로 한산하다. 그래도 시내 생선요리 뷔페점만은 신선한 생선맛을 보겠다는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1인당 3900크로나. 예전 같으면 약 50유로(약 8만5000원)에 해당하는 값비싼 뷔페였지만 지금은 30유로대(약 5만 원대)로 떨어졌다.

아이슬란드의 뉴스포털 아이스뉴스에 따르면 구글 등 포털에서 아이슬란드 호텔 정보를 찾는 사람들의 수가 이전에 비해 몇 배로 늘었다.

24일 파이낸셜타임스는 “크로나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아이슬란드 자산을 싼 값에 잡으려는 해외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전했다.

한때는 해외에 나가 쇼핑과 여행을 마음껏 즐기던 아이슬란드 국민들. 그들은 이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에 다가올 변화를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다.

레이캬비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인플레이션-고금리가 위기 근본원인
아이슬란드 화폐 유로존과 통합해야”▼


■ 아이슬란드대 마티아손 교수

“최근에 누렸던 부를 한동안 다시 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이슬란드는 앞으로 국민총생산(GDP)이 10% 하락하고, 국민 생활수준도 15% 정도 떨어질 것이다.”

24일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대에서 만난 톨로푸르 마티아손(55·사진) 경제학과 교수는 아이슬란드의 금융산업은 재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봤다.

“우리는 은행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사업이 국내 영업으로 축소될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은행에서 해고됐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외국에서 직장을 구하거나 전공을 바꿔야 할 처지에 놓였다.”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아직까지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의 아이슬란드’가 어떻게 될지 잘 몰라서 그럴 수 있다. 당장 이달 말이 되면 많은 기업이 자금난으로 월급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가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된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

“정부는 어업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벗어나 제조업을 육성하려고 노력했다. 낙후된 동부 지역에 알루미늄 제련과 전력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GDP의 2, 3배에 이르는 막대한 돈을 투자했다. 국내 경기가 과열됐다. 당시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을 우선 목표로 뒀기 때문에 경기가 과열되자 이자율을 높여 대응했다. 이자율이 한때 15%까지 올랐다. 이 때문에 고금리를 노린 단기 외화자금이 많이 들어왔다. 아이슬란드 은행은 그 돈을 장기로 대출했다. 단기 자금과 장기 대출 사이에 불일치(mismatch)가 발생해 균형이 깨졌다.”

―아이슬란드 통화가 수시로 위험에 노출돼 왔는데….

“세계화 시대에 작은 나라의 통화는 위험하다. 아이슬란드는 유로존(유로화 사용국가)과 화폐통합을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만 외부 충격을 견딜 수 있다. 당장 유로존 가입이 어렵다면 이웃 국가인 노르웨이와 일단 화폐를 통합하는 데 나서야 한다.”

레이캬비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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