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나가는’ 미국 대선… ‘잘나가는’ 유머-풍자

  • 입력 2008년 10월 10일 02시 54분


‘좌충우돌’ 페일린 등 풍자 재료 무궁무진

‘오바마 걸’ 동영상 등 인터넷서 무한복제

종반전에 접어든 미국 대선전은 인신 공격성 발언 등 공방 수위가 비등점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유세 현장의 말이 험악해질수록 TV와 인터넷에는 유머와 풍자가 무성해지고 있다. 특히 이번 대선 레이스는 역대 어느 때보다 ‘유머 산업’이 번창하고 있다.

‘바람둥이 전직 대통령의 부인으로 대세론을 몰고 왔던 여걸 후보’가 무너진 민주당 경선부터 시작해 ‘초짜 부통령 후보의 좌충우돌’에 이르기까지 풍자의 도마 위에 오를 재료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페일린은 코미디 위한 신의 선물”

2일 부통령 후보 TV토론이 끝난 뒤 NBC방송의 코미디 프로인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는 패러디 토론을 방영했다.

세라 페일린 공화당 부통령 후보 역의 코미디언 티나 페이는 사회자가 뭘 질문하든 아랑곳없이 “나와 매케인은 매버릭(당파에 얽매이지 않는 소신의 정치인)”이라며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으며 윙크를 남발하는 능청을 떨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부통령 후보 역의 제이슨 수데이키스는 어떤 질문이 나오든 “나는 매케인의 가장 친한 친구이며 그를 정말 사랑한다”고 강조한 뒤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를 헐뜯는 발언을 되풀이했다.

패러디 토론 시청자는 무려 1000만 명에 달했으며 나중에 인터넷에서도 1000만 명 이상이 클릭했다. 이 밖에 코미디센트럴의 ‘존 스튜어트의 데일리 쇼’ 등도 최고 시청률 행진을 하고 있다.

코미디 제작자들이 꼽는 최고 흥행 요소는 페일린 후보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로네 마이클스 프로듀서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페일린 후보 지명은 신이 우리에게 미소를 지어준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프로는 올가을 들어 시청률이 50% 이상 올라갔다.

○‘오바마 풍자는 조심스러워…’

특이한 점은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풍자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코미디 프로 진행자들이 자칫 인종차별적 농담으로 해석될 것을 우려한 탓도 있지만 오바마 후보에겐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같은 여성 편력이나 조지 W 부시 대통령 같은 말실수 등 코믹적인 요소가 없는 점이 꼽힌다.

항상 차분하고 진지해 보이는 오바마 후보와 달리 매케인 후보는 유머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고 스스로도 유머를 즐긴다.

조지메이슨대 미디어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제이 레노 쇼, 데이비드 레터먼 쇼의 웃음거리 소재로 가장 많이 언급된 후보는 페일린(180회) 후보였고 이어 매케인(106회), 오바마(26회), 바이든(16회) 후보의 순이었다.

○컴퓨터 그래픽 동원 ‘수준급’

지난해 6월 한 광고제작자가 만든 ‘난 오바마에게 푹 빠졌어요-오바마 걸’이란 3분 18초짜리 동영상은 이번 대선을 동영상의 제전(祭典)으로 만드는 신호탄이었다.

동영상에서 오바마 후보를 흠모하는 섹시한 여성으로 등장한 25세의 무명 여성 모델 앰버 리 에팅어 씨는 순식간에 스타의 반열에 올랐고 이후 수많은 아류 동영상이 등장했다. 리(Lee)라는 중간 이름을 쓰는 에팅어 씨는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근무한 적이 있지만 한국계 피는 섞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부분 개인이 만들어 올리는 동영상 중에는 컴퓨터그래픽을 동원한 정교한 것도 많다. 내용상으론 공화당 후보를 공격하는 게 압도적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NBC 방송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부통령후보 TV토론 패러디(2일)<로이터/동아닷컴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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