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연현식]후쿠다 外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 입력 2008년 8월 2일 02시 56분


한일관계에도 모처럼 좋은 기회가 다가오는 듯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에 일본에서는 후쿠다 야스오 총리를 포함해 총리 경험자 3명이 방한해 축하했다. 당선인 특사 자격으로 방일한 이상득 의원에게 일본은 이름을 풀이하면서 서로에게(相) 이득(得)을 주는 윈윈 관계의 구축을 이야기했다.

후쿠다 총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하자 예상치 않게 총리 직을 맡게 됐다. 그러나 연금 문제, 후기고령자보험 문제, 경제 부진으로 인한 낮은 지지도(20%대)로 고전하고 있다.

그는 원래 외교 문제를 장기로 하는 이른바 ‘외교족 의원’이라 내정의 여러 어려움을 외교적인 성과로 돌파하기를 모색하였다. 7월 초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도 지도력을 발휘해 정권의 지지도를 높여 보려고 했지만 기대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독도 문제와 관련해 일본이 다시 강경한 조치를 감행하고 나섰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가해자로서 반성하기보다는 히로시마 원폭의 피해자로 묘사하기에 급급했다. 또 독도 찬탈의 가해자로서 반성은커녕 한국의 불법 점령에 의한 피해자로 스스로를 묘사한다. 특히 독도를 러시아에 점령당한 북방영토와 같은 수준에서 다뤄 한국이 무력으로 강제 점령한 듯한 인상을 주는 등 매우 악의적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국제사회의 리더를 꿈꾸는 일본의 국가적인 품격까지 심각하게 의심케 만든다.

일본은 이번 사태로 외교적 운신의 폭을 스스로 위축하는 우(愚)를 범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때 북-일 대화를 주도한 다나카 히토시 전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한반도를 일본 외교의 원점으로 정의한 바 있다. 대(對)한반도 관계, 현실적으로는 대한(對韓) 관계의 정립이 일본 외교의 출발이라는 인식이다. 후쿠다 정권은 한국과의 좋은 관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북-미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일본의 대북 관계도 불리해지고 있다. 미국은 일본이 중시하는 납치 문제를 테러지원국 해제의 결정과 직결시키지 않는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후쿠다 정권은 남북한과 모두 대립하는 대결적이고도 경직스러운 대(對)한반도 관계를 운용하게 됐다. 대한 관계의 불편함으로 인해 후쿠다 정권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한국의 협력을 당분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는 후쿠다 외교의 실책을 의미한다.

한국의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혹시나’ 한일 관계의 발전이 가능할까 하며 가졌던 기대감은 ‘역시나’로 끝나 버렸다. 일본의 처사는 일본에 대한 한국민의 일말의 기대를 저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일본은 신뢰하기 어려운 국가임을 새삼 재확인시켜준 사건인지 모른다.

연현식 국가정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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