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드베데프 G8서 ‘푸틴식 강성발언’ 쏟아내

  • 입력 2008년 7월 11일 03시 13분


“전현직 대통령이 어딘가는 다를까 했더니, 다름이 없었다.”

일본 도야코(洞爺湖)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을 지켜본 서방 외교관과 언론들은 한결같이 이 같은 반응을 나타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번 회의로 대형 국제무대에 처음 데뷔했다. 이 때문에 서방 측 인사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전임자 블라디미르 푸틴(현 총리) 전 대통령과는 다른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무엇인지 눈여겨보고자 애썼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푸틴 총리처럼 전직 국가보안위원회(KGB) 간부를 지내지도 않았으며 크렘린 내부 관료들과 친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그의 행보는 올 5월 취임 당시부터 서방의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그가 국내에서 자유주의 개혁을 실행에 옮긴다면 러시아의 대외관계 기조가 바뀔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서방의 기대는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G8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미국과 체코가 미사일방어(MD)기지 배치 문제에 합의하자 “러시아는 상응하는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문제에 대해서는 “러시아가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발언은 푸틴 총리가 대통령 시절 국제무대에서 쏟아낸 강성의 수사학을 떠올리게 했다.

러시아 일간지 브즈글랴드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연설 장면을 본 영국이 녹아웃(Knockout)됐다”고 보도했다. 영국은 2006년 11월 독극물을 마시고 숨진 러시아 정보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사건 이후 계속 악화된 대(對)러시아 관계의 복원을 모색해 왔다. 영국의 가디언은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리트비넨코 사건 등 대외 문제에 대한 자세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전직 대통령을 닮아가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강경한 발언이 연속되자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긴장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도 가라앉고 있다. 미국의 MD 기지를 수용하기로 결정한 체코에서는 “이 때문에 러시아와 충돌할 것이 분명하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그루지야는 메드베데프 대통령 취임 이후 러시아인 거주지역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 등과 관련해 러시아로부터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경고를 받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서방의 관찰자들은 ‘도대체 메드베데프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게 됐다”고 전했다. 반면 모스크바의 한 외교관은 “푸틴의 그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메드베데프에게서 다른 통치 스타일을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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