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 ‘제3의 길’ 유럽 ‘제4의 길’로?

  • 입력 2008년 5월 27일 02시 58분


3국 중도좌파, 극좌 득세 - 우파 중도화에 샌드위치

《1990년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표방했던 ‘제3의 길’이 위기에 처했다. ‘제3의 길’은 거칠게 말해 ‘좌파 정당 내 우파 노선’의 성공 전략으로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유럽이 세계화의 도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반적으로 ‘우향우’ 하고 좌파 정당 안팎에서는 극좌파가 득세하면서 ‘제3의 길’이 좁아지고 있는 것.》

독일에서는 기민당과의 대연정에 참여한 사민당이 지난해 쿠르트 베크 당수를 선출하고 슈뢰더의 개혁 노선을 밀어냈다. 사민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기민당과의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해 선명 노선을 택한 것이지만 이후 극좌파가 득세하면서 오히려 좌우로부터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퇴진한 노동당 블레어 총리의 바통을 이어받은 고든 브라운 총리가 1930년대 이래 최악의 지지율로 고전하고 있다. ‘샤를 드골 없는 드골주의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작가 앙드레 말로의 말처럼 ‘블레어 없는 블레어리즘은 힘든 것이 아닌가’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 색깔 분명한 정책으로 입지 넓히는 극좌파

지난해 6월 베를린에서는 ‘독일좌파당’이 통합 창당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을 선언했다. 좌파당은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PDS)과 사민당의 우경화에 반발해 탈당한 사민당 내 좌파와 노동계가 연대해 창설한 정당이다.

좌파당은 공식 통합 전인 2005년 이미 총선에서 ‘선거연합’ 형태로 8.7%의 지지를 얻어 제4당으로 부상했다. 이후 실시된 동독지역 주의회 선거에서는 제2당으로 떠올라 돌풍을 일으켰다. 내년 총선에 대비한 정당별 지지도 조사에서 좌파당은 14%의 지지율로 기민-기사당 연합과 사민당에 이어 제3당을 차지할 것으로 나타났다. 사민당의 지지율은 23∼24%로 기민당의 38%와는 큰 격차를 보였다. 일간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사민당이 약세를 보이고 좌파당이 득세함에 따라 독일의 정치구도는 오랜 2강(기민당 사민당) 2약(자민당 녹색당) 체제에서 1강(기민당) 1중(사민당) 3약(좌파당 자민당 녹색당) 체제로 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대선에서 혁명공산주의연맹(LCR) 후보로 출마한 34세의 정치인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극좌파의 중심이 될 새로운 반(反)자본주의 정당의 창립을 추진하고 있다. 청년층에 인기가 높은 그는 지난해 대선 1차 투표에서 4%를 얻는 데 그쳤지만 지금 당장 투표를 한다면 8%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의 행보가 관심을 끄는 것은 사회당이 올해 말 당대회에서 온건 노선을 선택할 경우 사회당 안에 오랫동안 둥지를 틀어온 극좌파의 대거 탈당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사회당 내에서는 최근 연임에 성공한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시장이 공개적으로 자유주의 수용을 주장하며 세골렌 루아얄 전 대선후보의 정통 노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들라노에 시장의 프랑스식 ‘제3의 길’이 사회당 노선으로 채택된다 해도 극좌파의 득세에 밀려 고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복지 등 우파의 좌파 정책 빌려오기 성공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속속 우파 정권이 집권하는 가운데 우파의 ‘중원 침입’ 전략도 ‘제3의 길’을 어렵게 만들었다. ‘제3의 길’이 성공한 것은 좌파가 우파의 정책을 빌려 중원을 장악했기 때문인데 최근에는 우파가 적극적으로 좌파의 정책을 빌려와 ‘이데올로기적 잡탕’을 만들며 성공하고 있는 것.

영국 보수당의 젊은 당수 데이비드 캐머런은 ‘온정적 보수주의’를 표방하며 마거릿 대처 전 총리 이래 보수당의 냉정한 면모를 일신해 10년 장기 집권한 블레어 전 총리를 쫓아냈다. 정신장애인 아들을 둔 캐머런 후보는 장애인 교육, 복지 분야에서 전향적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까다로운 영국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었다.

내년 차기 총선의 총리 후보로 압도적 선두를 달리고 있는 독일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여성 및 탁아정책 등에는 사민당 못지않게 적극적이다. 최저임금제 채택 등 사민당의 요구까지 일부 받아들이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68혁명의 대표주자인 베르나르 쿠슈네르를 외교장관에 기용하는 등 좌파 인사를 대거 받아들여 변신을 모색하는 프랑스 사회당의 행보를 한층 어렵게 만들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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