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도 에너지 파동

  • 입력 2008년 5월 11일 20시 15분


"우리나라가 산유국이 맞나. 석유와 전기 값이 왜 이리 가파르게 오르나."

세계 2위 산유국인 러시아의 국민들이 최근 부쩍 자주 입에 올리는 의문이다.

우랄 산 석유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한 9일, 모스크바 남쪽 칼루가 주(州)의 주유소들은 자동차 연료용 석유 값을 알리는 길거리 광고판을 앞 다퉈 철거하고 있었다. 한 주유소 직원은 "광고판에 적는 석유 값이 날마다 올라 운전자들의 항의가 빗발치는 바람에 광고판을 아예 없애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신형 자동차에 사용하는 옥탄가95 휘발유는 이날 모스크바 외곽 도시에서 L당 23루블(약 1000원)까지 올랐다. 비산유국에 비해선 여전히 싼 값이지만 자동차 운전자들은 "최근 두 달 사이에 휘발유가 10% 이상 올랐으니 석유회사는 배가 터질 것"이라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에너지 생산 회사들의 주가도 날마다 오르고 있다. 러 일간 코메르산트는 이날 "러시아 최대 가스 기업인 가스프롬의 시가총액이 차이나모바일과 GE를 제치고 세계 3위로 등극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고유가 수혜국인 러시아 정부와 주민들은 유가 급등에 따른 국내 에너지 파동을 걱정하는 형편이다. 러시아 발전소들은 에너지 공급의 한계에 이르렀다. 가스프롬과 같은 대형 에너지 기업들이 고유가를 이용해 수출에 매진하는 대신 내수용 에너지 공급에는 소홀했기 때문이다.

전력난을 타개하기 위해 나온 정책은 석탄 발전소 증설. 모스크바타임스는 독점기업인 러시아 통합전력시스템(UES)이 6일 중국 하얼빈터빈 회사와 660메가와트 석탄발전소를 세우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석탄 발전은 오염이 심해 시대에 역행하는데다 이는 산유국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으나 UES는 "현재로선 대안이 없다"고 밝혔다.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산유국들은 석유 수출 세금도 올리겠다고 나섰다. 러시아는 6월1일부터 원유 수출세금을 17% 올리기로 했다. 베네수엘라도 원유수출세를 덩달아 올릴 계획이다. 이에 앞서 인도네시아는 이달부터 석유 수출 물량을 동결하고 있다.

산유국이지만 소비용 석유와 가스 파이프라인이 부족한 아제르바이잔과 카자흐스탄의 지방 도시들도 석유 값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과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모스크바=정위용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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