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가 준비된 리더?

  • 입력 2008년 3월 26일 02시 50분


“대통령 부인 때 총격속 보스니아 방문” 거짓말 들통

"(대통령 부인 시절인 1996년) 보스니아에 갔을 때가 분명히 기억난다. 저격수의 총격 속에서 착륙했고, 예정됐던 공항 환영행사 대신 고개를 숙인 채 차로 뛰어가 기지로 향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경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지난주 초 이라크전쟁 5주년 연설 내용 중 한 대목이다.

풍부한 외교안보 경험을 강조하기 위해 붙인 이 '보스니아 회고'가 힐러리 후보의 신뢰도에 뼈아픈 타격을 주는 부메랑이 됐다. 당시 동행했던 수행원, 사진기자들이 "공항에 내렸을 때 총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고 잇따라 증언하고 나선 것이다.

"영부인이 차로 뛰어가는 걸 본 기억이 없다. 그랬다면 당연히 사진을 찍었을 것"(현재 뉴욕타임스에 일하는 당시 AP사진기자), "저격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사전 브리핑을 받긴 했지만 총소리는 기억에 없다", "영부인은 우아한 모습으로 보스니아를 방문했고 평화유지를 위해 파견된 미군들과 사진들과 찍었다"….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에는 당시 수송기에서 내린 힐러리 여사가 딸 첼시와 함께 미소를 띤 채 손을 흔들며 활주로를 걸어와 보스니아 대통령 권한대행과 8세 소녀의 영접을 받는 모습이 담긴 CBS뉴스 동영상이 올랐다.

힐러리 후보는 24일 "말을 잘못했다. 실제 총소리가 울린 게 아니라 저격 위험 때문에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라고 실수를 인정했다.

힐러리 캠프는 "힐러리 의원은 자서전 '살아있는 역사'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하고 정확히 설명한 바 있다"며 "의도적으로 부풀린게 아니라 연설 도중에 즉석에서 숱한 여행기억들을 되살리다가 실수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캠프는 "힐러리 후보가 자신의 역할을 얼마나 과장해 왔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더 추가됐다"고 비판했다.

한편 오바마 후보의 지지자인 고든 피셔 전 아이오와주 민주당 책임자는 이날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오바마 후보의 애국심에 문제를 제기하는 빌 클린턴 전대통령의 행동은 매카시(1950년대 매카시즘을 일으킨 장본인)에 비견되며, 모니카 르윈스키의 푸른색 드레스에 묻은 것 보다 더 깊은 오점을 남길 것"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곧 글을 삭제하고 사과했지만 "오바마 진영에 품위있는 말이 바닥난 것 같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양 후보 진영의 자극적 언사는 장군멍군식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 힐러리 후보의 자문역인 제임스 카빌 씨는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가 오바마 후보 지지선언을 하자 "가룟 유다가 은화 30냥에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버린 일이 일어났던 부활절에 즈음에 일어난 배신행위"라고 비판했다.

리처드슨 주지사가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장관에 발탁돼 정치적으로 성장했으며 그동안 클린턴 집안과 절친한 관계를 유지해왔음을 지적한 것이다.

리처드슨 주지사는 이에대해 "그게 힐러리 의원 주변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며 "그들은 대통령이 다 된 듯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유다 비유 발언이 파문을 일으켰지만 카빌 씨는 24일 "나는 핵심을 분명히 짚고 싶었을 뿐"이라며 사과를 거부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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