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 英 금융정책 ‘시장 개입’ 깃발드나

  • 입력 2008년 3월 26일 02시 50분


베어스턴스 - 노던록 등에 공적자금 투입

‘부도회사 안살려’ 기존 자율 기조와 배치

‘시장주의’가 후퇴하는 신호일까.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신(新)자유주의 기조를 선언한 뒤 금융시장에서 ‘경쟁과 자연도태의 원칙’을 고수하던 미국과 영국 정부의 정책 기조에 변화가 있다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지난달 영국 정부가 파산 위기에 빠진 노던록 모기지 은행을 국유화하기로 결정하고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투자은행(IB) 베어스턴스에 3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나온 신호다.

영미 당국의 움직임을 두고 국제금융계 일각에서는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는 반(反)시장적 조치를 취했다”는 비난을 하기도 한다.

미국은 이 밖에도 지난해 가을부터 당시 연 5.25%였던 기준 금리를 여섯 번에 걸쳐 현재의 2.25%까지 내리고 은행들이 보유한 국채 등을 담보로 달러를 빌려주는 ‘기간입찰대출(TAF)’을 도입하는 등 시장 상황에 적극 개입하는 조치들을 잇달아 취했다.

영국 정부 역시 지난해 9월 노던록 은행에서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가 벌어졌을 때만 해도 ‘시장 불개입’ 원칙을 고수했지만 상황이 악화되자 예금의 지급 보증, 250억 파운드의 긴급 구제 금융, 국유화 등으로 정부 개입 강도를 높여갔다.

1986년 영국의 금융산업 빅뱅 이후 미국과 영국은 시장의 자율규제로 금융 경쟁력을 키워왔다. 부도회사에 대해서는 ‘가차 없다(merciless)’고 할 정도로 엄격한 퇴출을 유도했다.

부도 금융기관에 자금 지원을 하고 연쇄 부도를 막는 것은 오히려 동아시아 국가들의 해결책이었다. 한국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한국자산관리공사와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공적자금을 투입해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을 매입했다. 일본도 1990년대 은행 부도 사태 때 금융재생위원회(FRC)가 나서 은행들을 살렸다.

물론 이를 두고 영미 금융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를 말하긴 이르다는 견해도 있다.

신뢰를 기초로 한 금융시스템은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인프라로서 붕괴를 방치할 경우 경제 전체에 치명상을 입힌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시스템 보호를 위해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금융의 원리라는 것이다. 공적자금이라는 제도가 존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신인석 중앙대 교수·경제학)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미국은 이번 베어스턴스 사태를 정부 개입이 필요한 ‘시장 실패’의 사례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 같은 행보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은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 해법으로 공적자금의 투입을 주장했다.

한국은행의 관계자는 “금융위기가 수습된 뒤 미국 정부와 의회 차원에서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과 감독대책을 논의할 것”이라며 “새로 나올 금융감독 정책을 봐야 30여 년간 금융시장을 지배해온 시장만능주의가 후퇴하는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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